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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해리포터 세계관과는 다소 차이가 나는 내용입니다
판타지라는 점은 같지만 해리포터가 속한 판타지와 현존 판타지의 일반적인 부류라 불리는 장르 판타지(라 해야하나 뭐라 해야하나 하여튼....)랑 섞었습니다
그리고 인물들의 과거나 나이 등등은 조금씩 다 바뀌었습니다


******************************************


오래된 전설이 있다.
마법이란 사실 드래곤들이 인간으로 변해 유희 도중 전해준 것이라는 전설.
그들은 아름다웠고 뛰어났고 또한 신의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교활하여 드래곤에게 절대적인 약속을 이용하기 시작했고 많은 드래곤이 그에 희생 당했다.
그래서 드래곤들은 인간에 대한 지원을 끊기 시작했고 곧 세상에서 사라졌다.
인간들은 곧 그들의 부재를 안타까워 했으나 그도 잠시-, 인간들 스스로가 잘났다는 역사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차 '용'이란 단어는 드래곤 아래 하위 종족을 부르는 명칭이 되었다.

그러나 드래곤을 완전히 잊어버리진 않아서 간간히 인간들 사이에선 드래곤의 땅, 드래곤이 지켜주는 곳이라는 소리가 도는 곳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
.
.
.


"있잖아 그 소리 들었어?"
"어떤 소리?"
"우리 부모님들도 아시는 소문인데-"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 사이로 퍼져나가는 소문

"호그와트에 용이 산대~"
"에이.. 용이 얼마나 위험한 생물인데..."
"아니아니 그 용 말고... 진짜 드래곤!! 최초로 마법을 알려준 그 생물 말이야!!"
"그런 건 다 전설이야 론."
"아니라니까!! 지금 호그와트는 드래곤이 수호하고 있대. 전해들은 말로는 호그와트의 누군가와 맹약을 맺었다는데?"
"흐응..."
"알고 있잖아... 드래곤은 절대 약속을 어길 수 없는 거... 드래곤의 이름을 걸고 한 약속은 죽어도 지켜야 하는 거..."

붉은 머리에 주근깨가 잔뜩 난 소년이 믿지 않는 듯한 부스스한 갈색 머리카락의 소녀에게 침을 튀겨가며 설명했다.
소녀는 불쾌한 듯 보였으며 믿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그에 반해 짙은 밤색의 머리카락과 초록빛 눈을 가진 소년은 흥미진진한 얼굴이었다.

"만약-, 만약 어기면 어떻게 되는데?"
"그 자리에서 죽어."
"죽는다고?"
"응. 그 이름을 가진 드래곤은 죽어. 남은 건 그들에게 제 2의 심장이라는 드래곤 하트가 박살나고 그 상실감에 미쳐 날뛰는 육체 뿐이지. 그치만 그럴 경우 다른 동족들이 와서 처리해서 그리 큰 피해는 없다나봐."

전설을 읊어주며 신난 붉은 머리 소년을 답이 없단 얼굴로 보던 소녀는 앞서서 걸어갔고 두 소년은 계속 이야기 하며 쫓아갔다.

"드래곤들은 모든 면에서 뛰어나대... 그래서 하는 말인데..."

목소리를 낮추는 붉은 머리 소년의 태도에 덩달아 귀를 기울이는 초록눈의 소년과 귀를 쫑긋 세운 소녀가 지나가던 검은 머리의 엄격한 여교수에게 인사를 했다.

"혹시 덤블도어 교수님이 드래곤이 아닐까...?"
"설마...!"
"왜~ 덤블도어 교수님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천재에 마법 실력도 뛰어나시잖아. 그리고 150살인데 그렇게 정정하시잖아."

붉은 머리 소년의 말에 삽시간에 그들 셋은 토론을 하기 시작했고 결국 그들의 토론은 결론 없이 끝났다.



**********************************

Posted by 설하월우
|

밀려오는 파도 아래 고백할까요.
당신을 바랐다고...
수없이 닿고 지나가는 당신의 시선, 말 한 마디에 설렜다고...

중얼거립니다.

당신과 나는 항상 함께 하지만 영원히 닿지 않을 평행선이었던 것일까요.
미묘한 어긋남이 있지만 그 어긋남 덕에 평행선으로 남았노라고...
차라리 어쩌면 평행선인게 나은지도 모르겠노라고...

중얼거립니다.

너무나 가까워서
너무나 닮아있어서
너무나 잘 알아서

우리는 평행선이었나 봅니다.

서로를 너무나 잘 들여다볼 수 있지만...
단지 그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어떠한 교점도 가지지 않고 더 멀어지지도 더 가까워지지도 않는 평행선.

돌아보면 난 슬프도록 당신을 닮아있습니다.
당신을 닮기를 바랬으나 차라리 지금엔 당신을 닮지 않았다면 달라졌을까 합니다.

그랬더라면...
그랬더라면 아프진 않았겠죠...
직선 같은 사람이 아닌 유연한 곡선 같은 사람이 되었다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계속-
당신과 교차했을테니까...

한 번의 교점을 끝으로 멀어지는 직선이 아닌...
원한다면 수없이 휘어져 당신을 마주할 수 있는 곡선이었더라면...

그랬다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도 파도 아래로 사라지겠죠.
당신에게 닿기 전 파도가 모두 덮어주겠죠.

내 눈물, 내 아픔, 내 고백, 내 사랑...
모든 것을 가지고 저 깊고 깊은 바다 속에 묻어주겠죠.

누구도 볼 수 없게...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이 아니었다고 조금은 후회가 됩니다.
조금 더 당신을 볼 수 없다는 것이...
그저 지켜만 볼 수 있는 거리라 해도 당신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했어야 했다고 조금은 후회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당신에게 나는 언제라도 편하게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익숙한 존재였는데...
당신 마음 속에 있는 다른 사람을 알면서...
이런 바보 같은 짓을 저지르는게 아니었는데...

「교점」 하나도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동료]...
딱 여기까지였는데...

이 이상은 욕심내선 안 되는 것이었는데.....


나..... 바보같죠...?
.......알버스....


.
.
.
.
.


쏴아아-

파도가 부서지는 어느 아름다운 해안가.
새벽 동이 트기도 전 갑작스런 방문자가 나타났다.
허공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그 사람은 어두운 해변을 황급히 둘러보며 뛰듯이 걸었다.

바닷바람에 그의 긴 머리카락이 뒤로 흩날렸다.
서서히 색이 바래는 것처럼 하얗게 변해가는 적갈색 머리카락의 끝부분은 초록색 리본으로 묶어져 있었다.

뭔가를 찾듯 초조하게 시선을 돌리던 그의 시야에 뭔가가 잡혔다.
시야에 잡힌 그것을 향해 바삐 걸음을 옮기던 그는 어스름한 빛에 그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되자 걸음을 멈췄다.

파르르 그의 입술이 떨려왔다.
추위 탓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머뭇머뭇 다가가 그것의 옆에 털썩 무릎을 꿇고 앉는 그는 파도가 옷을 적시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미네르바...."

파도 아래 몸을 누인 채 눈을 뜨지 않는 여자를 보는 그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여자의 얼굴 부분은 파도가 치면 물에 잠겼다가 물이 빠지면 반쯤 드러났다.
그 사람은 떨리는 손으로 여자의 볼을 감쌌다.

손에 닿는 촉감은 시리디 시린 한겨울 북유럽의 바닷물보다 찼다.
얼음처럼 차갑고 매끄러운 감촉에 그의 이가 악물리며 그 사이로 거친 소리를 흘려보냈다.

파도에 따라 그녀의 목에서 번져가는 붉은 핏물이 점점 옅어졌다.
찢겨져 나간 옷 틈으로 붉게 부어있었을 상처들이 붓기가 빠진 것이 보였다.
생명이 고정되어 버린 듯 창백하고 파리한 안색이었지만 금방이라도 눈을 떠서 당차게 한 마디 할 것만 같은데...
항상 든든하게 옆에 있어줄 것만 같은데...

그는 여자를 들어 품에 안았다.
파도 아래 고요히 잠든 여자를 품에 안고 계속 볼을 쓸어내렸다.

어째서 바다로 사라진 것일까...
하늘이 잘 어울리던 사람이었는데...
하늘을 자유롭게 누비던 것이 즐거워 보였던 사람인데...
왜 하늘이 아닌 바다로 가라앉은 것일까...

마치 이카루스처럼...
가장 이카루스 같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왜...

여자를 안고 있던 그는 여자의 아래에서 부러진 지팡이와 낡은 단검을 발견했다.
포트키로 사용되었을 단검과 어째서 부러진 것인지 짐작가는 지팡이를 보며 그는 그녀를 하염없이 보듬어 안았다.

"...조금만 빨리... 알았더라면.... 시간을 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저 찬물 아래에 있었던 것인지 아무리 따뜻하게 해줘도 몸이 데워지지 않았다.

[그녀는 더이상 널 보지 않아.
네 곁에 없어.
넌 두 번 다신 그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
이젠 끝이야-]

불쾌한 목소리가 그의 마음을 흐트러뜨렸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사실이라는 듯 그녀 역시 반응이 없었다.

"큭.....! 이런.... 이런 것 원하지 않았는데....!! 난 그저.... 난 그저...!!!"

내 옆에 있어주기만 해도 좋았는데-
그런데 대체 왜....?

항상 소리내어 말하지 못한 말은 지금도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했다.

새벽이 지나 동이 트고 아침해가 수평선 너머로 떠올라도...
그가 그녀를 안고 사라질 때까지도...
그의 입에서 그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선택을 왜 한건지 난 이해를 못하겠어
내가 어리석은 것일까
미네르바...


.
.
.
.


아무리 오래 서로를 보더라도
아무리 서로를 비춰 닮았더라도
결코 닿지 않고 섞일 수 없는
평행선처럼
하늘과 바다처럼

그렇게 마지막까지 두 사람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았다.

드넓은 하늘 위 정점을 쫓다 떨어져 깊은 바다로 가라앉은 이카루스처럼...
영영 다시 하늘로 돌아갈 수 없는 그녀의 마음들은 파도에 실려 심해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는 결코 엿보지 못할 깊고 깊은 바닷속으로...

그리고 바다의 거울처럼 바다를 닮은 하늘은 그의 마음들을 저 우주 너머로 올려버렸다.
수면 아래로는 결코 전달되지 않는 그의 마음들은 점점 더 위로 퍼져나갔다.
그녀가 돌아오지 못할 높디 높은 하늘 위로...

처음부터 계속 닿아 있어 「교점」 투성이인 두 평행은...
닮기도 너무 닮아 있는 두 평행은...

하나이되 둘인 평행이지만
둘이되 하나인 평행이기에

결코 섞이지 못했다.

서로에게 전하지 못한 마음을 서로가 닿지 못할 곳에 두고...
누구보다 가까이 있지만 그 누구보다 멀리 있기에....

어떤 방법으로도 꺾이지도 닿지도 못하고
그저 끝없이 바라볼 뿐.

Posted by 설하월우
|

파란 하늘 아래 검푸른 숲과 호수에 둘러싸인 절벽 위의 아름다운 성.
성의 복도를 왁자하게 떠들며 지나치는 수많은 학생들.
평소와 같으면서도, 평소와 다른 오늘은 졸업식날이다.

1~6학년 아이들에게는 그저 평소와 같은 여름방학 시작일이지만 7학년에게는 남다른 날이다.
이제 9월 1일이 되어도 급행열차를 탈수도, 7년 간 정들었던 기숙사 방으로 돌아오지도 못하게 되는 날인 것이다.
하복 교복 차림으로 짐을 다 싼 학생들이 대연회장으로 모여드는 모습을 수많은 부엉이들이 바라봤다.
교수들도 평소와 달리 전부 대연회장으로 모이고 있었다.
7학년 학생들은 친구들과 친한 후배들과 아쉬운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다른 학년 학생들은 방학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잔뜩 들떠 이야기 하느라 대연회장은 평소의 배로 시끄러웠다.

그리고 평소라면 벌써 기숙사를 돌며 학생들을 대연회장으로 내려보내고 복도에 남은 학생들도 빨리 이동하라고 독촉하고 대연회장 내부를 정리했을 한 사람이 무슨 일인지 아직 방 밖으로 나서지 않고 있었다.
반장과 기숙사 대표 학생에게 학생들 인솔을 맡겨버린 그 사람은 창 밖을 내다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날씨는 청명하리만치 맑았다.
저 멀리 호수의 물 일렁임이나 금지된 숲에서 날아오르는 새들의 모습이 또렷이 보일 정도로 날씨가 화창한 밖을 바라보는 그 사람의 어깨는 평소보다 쳐져서 작아보였다.
창 밖을 바라보며 몇 번의 쉼호흡만을 반복하던 그 사람은 눈을 깊이 감으며 또 다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똑똑-

".....?"
"미네르바. 이러다 늦겠소."
".......아... 알버스...."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뒤쪽에서 들려온 가벼운 노크 소리에 돌아본 맥고나걸은 돌벽에 기대어서 서있는 키가 큰 한 사람을 발견했다.
물결치는 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그 사람은 인자한 얼굴로 웃어보이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교장과 교감이 졸업식에 늦는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문제가 있지 않겠소?"
"안 그래도 나가려던 참입니다."

덤블도어의 장난끼 섞인 말에 맥고나걸은 평소의 무뚝뚝함으로 대꾸하며 의자에 걸쳐두었던 망토를 걸쳤다.
일부러 그를 외면하려는 그녀의 모습을 보던 덤블도어는 그녀는 보지 못했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이해한다는 듯한 얼굴로 웃고 있었다.
책상을 돌아 문쪽에 서있던 그의 가까이로 온 맥고나걸의 어깨를 부드럽게 감싼 덤블도어는 가볍게 손바닥으로 어깨를 두어번 두드렸다.
그제서야 얼굴을 드는 맥고나걸에게 작게 웃어보인 덤블도어는 문을 열어주면서 그녀를 앞으로 내보냈다.

"왜 그렇게 힘이 없는 것이오?"
"글쎄요. 알버스가 잘못 보신게 아닐까요?"
"하여간..."

나란히 복도를 걸어가며 이야기 하는 두 사람의 귀로 늦었다고 뛰어가는 학생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평소라면 복도에서 저렇게 뛰어다니다니 어느 기숙사인지 몰라도... 라는 말로 나지막히 시작했을 잔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에 피식 웃으며 덤블도어는 작게 중얼거렸다.

"이런 점이 나의 아기 고양이의 매력이긴 하지만...."
"그런가요..."
"그렇소."

덤블도어가 중얼거린 말의 내용을 제대로 짚어보지도 않고 맞장구치는 맥고나걸을 보며 덤블도어는 또 다시 작게 풋 하는 웃음을 터트려야 했지만 이내 웃음을 거두고 옆에서 걸어가고 있는 그녀를 내려다봤다.
평소처럼 무뚝뚝한 얼굴에 드러나는 감정은 극히 적었고,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 쓴 듯 반듯한 모습은 흠 잡을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너무나 반듯해 엄격해 보이는 그런 모습마저도 사랑스럽게 보인다는 것에 중증이군 이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덤블도어는 대연회장으로 들어섰다.

학생들이 빼곡히 앉은 기숙사 테이블 사이를 지나 교수들이 앉는 자리에 가서 맥고나걸이 자리에 앉고 교수들 자리 앞쪽에 마련된 자리에 덤블도어가 서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학생들이 입을 다물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장 내를 놀란 눈으로 둘러보는 교수들 사이에서 작은 술렁임이 있는 것 외엔 대연회장에서 들리는 소리는 숨소리 밖에 없었다.
그런 장내를 쭉 훑어본 덤블도어는 양 팔을 크게 벌리며 말했다.

"한 해를 끝내기에, 그리고 학교 생활을 끝내기에 아주 좋은 날이로군요."

덤블도어의 가벼운 목소리가, 하지만 그 가벼움 속에 묻은 농도짙은 다정함이 학생들과 교수들에게 스며들었다.
모든 학생들이 귀를 기울였지만서도 특히 7학년인 학생들이 자신들의 교장 선생님의 마지막 말씀을 귀를 쫑긋 세워 경청했다.
평소보다 조금 길어진 덤블도어의 연설이 끝나고 점심 만찬이 나타났다.

그제서야 다시 시끄러워지는 학생들을 교수들은 피식 웃으며 보다가 식사를 시작했다.
평소와 같은, 하지만 어딘가 숙연함을 숨긴 발랄한 분위기가 점심 만찬 내내 흘렀다.

그렇지만 그리핀도르 테이블에서는 눈에 띄는 다섯 사람이 있었다.
짙은 밤갈색 머리카락의 안경을 쓴 남자, 약간은 구불거리는 검은 머리카락의 거만해 보이는 남자, 밝은 갈색의 벌꿀색 눈동자를 가진 온화한 인상의 남자, 자그마한 키에 통통한 볼을 가진 남자.
그리고 붉은 곱슬머리를 늘여뜨린 에메랄드 빛 눈동자가 인상적인 여자.
다섯명은 꼬옥 뭉쳐서 이야기를 했는데 연회장에 있는 그 누구보다 활기차 보였다.

만찬 음식을 거의 손도 대지 않고 가벼운 무알콜 칵테일로 입술만 축이며 학생들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는 맥고나걸의 눈에 그 다섯 사람이 들어오자 그녀의 눈동자에 문득 알 수 없는 것이 스쳤다.
살짝 부드럽게 풀리며 작은 떨림을 일으키던 그녀의 입술이 작은 동요를 숨기려는 듯 칵테일을 찾았다.

"미네르바. 드디어 악동들이 졸업을 하는군 그래?"
"오... 필리우스. 정말이지 내년부터는 학교가 조용할 것 같지 않아요?"
"글쎄... 아마 또 다른 악동들이 나타나지 않으련지..."
"그래도 저 아이들 보다는 나을겁니다."

그녀의 옆에 앉아 있던 플리트윅이 그녀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말을 걸었다.
맥고나걸은 그의 말에 피식 웃으며 개운하다는 듯 대꾸했다.
플리트윅은 그런 맥고나걸을 흘끗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만찬이 끝나고 학생들이 짐을 챙겨 내려오는 동안 7학년들은 대연회장에서 마지막으로 기숙사 사감들과 인사를 할 시간을 가졌다.
간간히 우는 학생들도 보였고 신나하는 학생들도 보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리핀도르 역시 예외는 아니었지만서도 다른 기숙사에 비해 평범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아까 전 다섯 사람 차례가 되자 다른 기숙사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반응이 나왔다.

"......정말이지...."

졸업식날마저 담당 사감인 맥고나걸이 이마를 짚게 만든 두 명의 악동과 그 옆에서 어색하게 웃는 한 사람, 안절부절 못하는 한 사람,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는 한 사람.

"마지막까지도 장난을 멈출 순 없는거니 포터! 블랙!"
"당연하죠!"
"이정도는 해야 호그와트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지 않겠어요 맥고나걸 교수님?"

마지막 대화라는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쨍하니 울리는 맥고나걸의 목소리에 돌아봤던 다른 기숙사 사감들과 학생들은 또 쟤들이야? 하는 눈을 하더니 크게 웃었다.
결과적으로 맥고나걸은 뒷목을 잡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슬픔이란 그림자를 걷어낼 수 있었다.

"에이... 이제 저희 가면 서운해서 어째요 교수님?"
"하나도 안 서운할 것 같구나. 너희가 없어 조용한 한 해가 될 것 같아 아주 만족스럽단다."
"하긴... 저희가 좀 그랬죠?"
"알고 있긴 한가보구나..."
"ㅎㅎ 당연하죠."

마지막까지도 능청스러운 웃음으로 넘어가는 자신의 제자를 못마땅한 눈으로 보던 맥고나걸은 이내 피식 웃었다.
해그리드가 들어와 이젠 가야한다는 말을 하자 학생들이 마지막 인사를 남기며 밖으로 향했다.

"그럼 항상 건강하세요 교수님."
"그런데 저희 가도 조용할 것 같지는 않은데요 교수님? 다른 학생들 중 저희 같은 애들이 또 나올 거에요."
"맞아요. 그러니 건강하셔야죠."

이건 뭐.... 악담인지 뭔지 모를 말을 하는 두 학생을 어이없다는 눈, 혹은 기가 차다는 얼굴로 바라보던 맥고나걸이 진짜 가려는 듯 가벼운 손가방을 드는 그들을 보자 잠시 흔들리는 눈을 했다.
하지만 아주 잠시여서 크게 티가 나진 않았다.
호그와트 사상 최악의 악동들이 인사를 오래 하는 통에 제대로 인사를 하지 못한 학생들이 얼른 그녀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고 맥고나걸은 그런 학생들을 부드럽게 다독이며 밖으로 내보냈다.

마지막 학생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자리에 가만히 서서 바라보던 맥고나걸은 학생들이 다 나가도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 맥고나걸을 가만히 지켜보던 동료 교사들이 다가와 마지막 기숙사 점검을 해야하지 않겠냐고 했고 맥고나걸은 그제서야 서둘러 그리핀도르 기숙사로 올라가서 두고 가는 것이나 아직 못 나간 학생이 있나 점검했다.

모두가 무사히 호그스미드 역으로 향했다는 것을 안 맥고나걸은 천천히 걸어 호그스미드 역이 잘 보이는 곳으로 갔다.
고양이로 변신해 높은 천장의 장식물 위로 올라간 맥고나걸은 가볍게 부는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모자를 붙잡으며 호그스미드 역을 바라봤다.
담담한 얼굴을 가리고 있던 무뚝뚝한 가면이 한 꺼풀 벗겨지고 드러난 그녀의 감정은 아까 전 울먹이던 학생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멀어서 누가 누구인지 구별은 안 가지만 호그스미드 역 주변에서 움직이던 학생들이 다 타고 증기를 뿜으며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을 빠져나간 기차가 점점 멀어져서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보던 맥고나걸이 품에서 지팡이를 꺼내 가볍게 휘두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의 지팡이가 휘둘러질 무렵 급행열차 안의 그리핀도르 7학년 학생들의 위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작은 편지가 나타나 떨어져 내렸다.
학생들은 모두 놀라워하며 그 편지를 잡고 뜯어보기 시작했다.
겉표지부터 너무나도 낯익은 글씨체로 각자의 이름이 쓰여져 있었다.

소중한 나의 아이들에게...
내가 보낸 편지에 이 학교를 들어왔던 너희가 졸업하는 날이 왔구나.
지난 7년 간 고생많았다.
호그와트에서 힘들었던 일도 있었을 것이고 즐거웠던 일도 있었을 것이야.
그리핀도르 아래에서 모두가 하나로 생활했던 것이 이제 오늘로 끝나 너희를 보내야하는 날이 오다니...
너희들 위에, 그 위에, 더 위에 선배들을 매년 보내왔음에도 매년 오늘이 낯설게 느껴지는 까닭은 아마도...
너희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만족했든, 만족하지 않았든 내 품에 7년이나 있었던 너희들을...
나의 사랑스럽고도 귀여운 아이들을 떠나보내야 하기 때문일거다.

앞으로 너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
호그와트에서야 너희가 비교적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었겠지만 이제부터는 아닐 거란다.
하지만 난 너희가 그리핀도르답게 잘 해낼 것이라고 믿는다.

너희가 싫어하겠지만....
난 언제까지고 너희의 담당 교수일 것이고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너희는 언제, 어디에 있든 자랑스러운 내 제자일테니...

모두에게 똑같은 문구로 시작한 편지가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모두의 눈에 들어왔다.
일부러 7학년들을 한 칸에 몰아넣은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손수 쓴 것 같은 편지 다음장은 개개인에 대한 편지였다.

누구에겐 걱정을, 누구에겐 격려를, 누구에겐 주의를...
항상 그들이 학교에 있을 때처럼 엄격한 어조로, 하지만 세심하고 꼼꼼하게 각자에 대해 쓴 편지를 보던 그리핀도르 7학년들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누구보다 엄격하고 올바른 스승의 마지막 말이었다.
물론 그녀가 죽거나 해서 다시는 못 만나는 건 아니겠지만 호그와트 학생으로서 받을 수 있는 마지막 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학생들에게 졸업이란 것을 다시 상기시켰고 참아왔던 눈물을 이끌어내는 효과가 있었다.

학생들이 열차 안에서 편지를 읽어보고 있을 무렵 맥고나걸은 올라가 있던 지붕에서 내려와 복도 기둥 사이에 숨은 채로 산 너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학생들 앞에서 차마 보이지 못한 눈물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강인하고 모든 학생들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그녀였기에 마지막까지도 무너진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집으로 돌아간 지금이라면 조금은... 조금은 감정을 허락해도 될 거라고 생각했다.

말썽꾸러기든, 우등생이든, 평범한 아이든...
그녀가 7년 간 가르치고 돌봐온 아이들 중 소중하고 사랑스럽지 않은 아이들이 없었다.
마음껏 표현해주진 못했지만 언제나 그들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이들이었다.
다른 사감들처럼 대놓고 표현하지 못한 것은 모든 아이들이 그녀에겐 소중했기 때문도 있지만 간혹 애정을 믿고 마음대로 행동하는 아이들이 있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사랑해주는 것과 모든 것을 용인해주는 것은 다른 것이란 것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했다.
절대적으로 그리핀도르 아이들 편이었지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인식시켜야 했다.
그래야 학교에서도, 학교를 졸업해서도 그 아이들이 살아가는데 최소한의 장애는 없을 것이라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눈에 보이는 애정보다 엄격한 기준을 먼저 내밀었다.

그녀라고 자신의 학생들이 소중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소중한 만큼, 사랑스러운 만큼 그녀는 더 엄해졌다.
자신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다른 아이들에게 엄격하고 공정한 만큼 다른 교수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 공정해지게...
혹여 잘못을 저질렀다면 다른 교수들에게 혼날 정도는 혼나고 그 이상은 안 혼나도록 자신이 감싸올 수 있게...

그러다보니 아이들에게 다정하게 대해준 것보다 잔소리하고 엄격히 대한 것이 훨씬 많았다.
칭찬마저도 최소로 해준 것 같아 항상 이 때가 되면 그 점이 안타까웠다.

살갑게 대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녀가 학생들에게 가진 애정이 얇다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가 엄격하기 때문에 애정은 더 깊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이지 않은 곳에서 아이들을 감싸며 세심히 돌봐왔다.
작용 반작용의 원리처럼 그녀의 사랑은 그랬다.

편지도 그랬다.
며칠 밤을 꼬박 새워 학생들에게 줄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 편지를 쓰며 그동안 못해줬던 말들을 적었다.
한마디 한마디...
지금까지 그녀가 표현하지 못한 애정을 담아 직접 손으로 진심어린 말들을 적어나갔다.

매년을 반복하는 일이었지만 학생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7학년들을 같은 칸에 몰았던 것도 있지만 학생들이 후배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비밀을 지킨 것도 있었다.
전혀 기대도 안 했던 일이 벌어질 때의 감동을, 그녀가 조금도 드러내지 않았던 따뜻한 관심을 확인하는 순간의 감동을 후배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미네르바 맥고나걸 그녀는 이토록 겉보다 속이 더 깊고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는 덤블도어가 있었다.
며칠 전부터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하는 그녀를 지켜봐왔고 오늘도 평소와 달리 본인이 데리러 갈 때까지 나오지 않은 모습을 보면 그녀의 마음쯤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더구나 그것이 매년 반복되는 일이라면 더더욱 더...
겉으론 평소랑 똑같이 말하고 행동하지만 사실은 아주 작은 사소한 것을 신경쓰지 못할 정도로 그녀가 동요하고 있는 상태를 지켜보다보면 왜 그런지, 어떻게 행동할지는 뻔히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 훨씬 다정하고 속이 깊고 여린, 섬세한 사람이니까.

학생들에게는 맥고나걸 교수님이란 이름으로 정형화된 어떠한 이미지가 있는 모양이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는 것을 잘 아는 덤블도어로서는 지금 모습도 어색하다거나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원래 남에게 완벽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가장 인간적이란 말이 있으니까...

이러한 맥고나걸의 모습을 아는 것은 덤블도어 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동료 교수들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덤블도어만큼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건 동료 이전에 그녀에 대해 얼마나 더 잘 알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 것이니까.

눈물을 닦고 이쪽으로 걸어오는 그녀를 보며 덤블도어는 가만히 서 있었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덤블도어를 알아챈 맥고나걸의 눈이 커졌지만 별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그저 민망하다는 듯 살짝 붉힌 얼굴과 그 민망함을 들키지 않기 위해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모습이 있을 뿐.

귀여운 그 모습에 덤블도어는 웃으면서 맥고나걸을 그의 소매가 넓은 옷으로 감쌌다.
살짝 굳은 그녀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추며 덤블도어는 그녀를 이끌었다.
지금 그녀가 느끼고 있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이끌자 그녀는 순순히 따라왔다.

그날 저녁은 교수들끼리 술자리가 있었다.
내일이면 대부분의 교수들이 호그와트를 떠난다.
그 전에 한 해를 마무리하며 다들 편안히 한 잔씩 하며 즐기는 것이었다.

학생들을 떠나보내고 헛헛한 마음에 평소보다 조금 더 마셔버려 살짝 취기가 오른 맥고나걸이 조금씩, 평소라면 꺼내지 않았을 마음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맥고나걸 뿐만 아니라 다른 교수들 중 이미 술이 거나하게 취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던지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아... 사실은... 그녀석들이 떠나도 하나도 개운하지 않아요."
"그래요?"
"네... 분명 개운해야 할텐데... 조금 쓸쓸한 기분이에요."

쓸쓸한 얼굴로 그렇게 말한 맥고나걸이 다시 술을 마셨다.
언제 시끌시끌한 자리에서 탈출한 것인지 덤블도어가 그녀 앞에 앉아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었다.

"한심하지 않아요? 매년 반복되는 일인데... 매해 새삼..."
"아니..."

자조적으로 웃는 맥고나걸의 머리를 손을 뻗어 쓰다듬어준 덤블도어가 입을 열었다.
맥고나걸의 눈이 그를 향했다.

"조금도 한심하지 않소. 그저 미네르바는 학생들 모두를 많이 아낀 것 뿐이야."
"그런가요...?"
"물론... 그리고 이런 모습들도 다... 싫지 않아. 사랑스러워."
"네...?"

다시 한 번 이마에 닿는 덤블도어의 입술에 맥고나걸은 순간 몽롱했던 정신이 훅 깨는 것을 느꼈다.

"나의 아기 고양이는 마음이 너무 약해서 문제야...."
"....에...? 에에....? 알버스....?"
"이런... 전혀 눈치 못 챈 것이었소? 오늘 하루종일 이리 불렀소만..."

이제서야 이상하게 느껴지는 호칭에 맥고나걸의 눈이 커졌다.
볼이 술기운 때문이 아니라 다른 이유로 점점 더 붉어졌다.
그것을 보며 피식 웃은 덤블도어가 쐐기를 박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렇게 부르고 싶은데... 허락해주겠소?"
"아니 잠시만요 알버스... 그게 대체..."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고... 말하고 있는거야. 미네르바."

뜻밖의 상황에서, 뜻밖의 인물에게 들은 고백이 충격적이었는지 맥고나걸은 멍한 얼굴을 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그녀의 멍한 얼굴을 본 덤블도어는 피식 웃었다.

"자 그럼, 미네르바...?"
"...어...으음..... 그러니까..."

사과보다 붉게 물든 얼굴로 그녀답지 않게 버벅되는 모습을 보던 덤블도어는 그녀의 옆자리로 가 짧게 한 마디 하더니 입을 맞췄다.

"아니... 굳이 대답을 안 들어도 알 것 같은데..."

쪽 하고 작게 울리는 소리에 안 그래도 터지기 직전이던 얼굴이 더 물들었다.
부드럽게 휘어진 그의 눈매를 보던 맥고나걸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덤블도어는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정수리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에 부끄러워하던 맥고나걸은 피식하고 웃음을 터트리더니 크게 웃었다.

"정말이지... 완전히 잊어버렸잖아요."

갑작스러운 덤블도어의 고백과 행동에 그 때까지 우울했던 감정이 사라졌다.
당황스럽고 놀랍기도 했지만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맥고나걸은 그제서야 요 근래 들어 처음으로 소리내어 웃었다.
그런 맥고나걸을 보는 덤블도어의 입에도 미소가 걸렸다.

"그렇지만 이건 진심이야. 나의 아기 고양이씨."
"....알고 있다고요 알버스."

그렇게 가장 문제가 많던 학년이 졸업하던 날...
호그와트에 커플이 탄생했다.







ㅇㅅㅇ....

항상 엄하고 무섭다가 졸업식날 우시는 인간적인 선생님들.... 넘 좋습니다


Posted by 설하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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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그스미드 방문일을 앞두고 눈이 내렸다.
소복히 쌓인 눈 위로 외출에 신난 학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항상 겨울이 되면 그녀의 필수품이라서 세트처럼 여겨지는 짙은 녹빛의 귀마개를 한 맥고나걸이 필치가 건네주는 확인서를 받아 외출을 나갈 학생들을 살펴봤다.

"귀환 시간은 저녁 식사 시간까지입니다. 나가서 사고를 치거나 하는 학생은 영구히 외출을 금지할겁니다. 호그스미드 방문은 굉장한 특권임을 잊지 말고 그에 걸맞게 행동하세요."
"네~"

학생들에게 늘 하는 주의를 주고 맥고나걸은 그들이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봤다.
학생들이 저 아래까지 걸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뒤를 돌아서는 맥고나걸의 머리 위로 작은 눈송이가 내려앉았다.

"눈이..."
"또 눈이 오는군요. 맥고나걸 교수님."
"그러게 말입니다 필치."
"교수님도 오늘 나가십니까?"
"그럴 예정이에요. 조금 늦을 수도 있고요."
"알겠습니다."

맥고나걸의 말에 다리를 절룩이며 필치가 먼저 학교 안으로 향했다.
맥고나걸은 잠시 분수대 앞에 서서 하늘을 올려다 봤다.
잿빛 하늘에서 하얀 점들이 점점 커지는 것이 보였다.

후우-

하늘을 올려다보는 맥고나걸의 입에서 새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
하늘로 조금 올라가다 투명해지는 입김을 보고 있는데 하늘에서 떨어진 눈송이가 맥고나걸의 차가운 안경에 내려앉았다.
아름다운 모양의 눈송이가 잠시 동안 안경알 위에서 모양을 유지하다가 물방울이 되었다.
장갑 손가락 끝으로 물방울을 닦아낸 맥고나걸은 학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방에 들어와 그새 조금 젖은 망토를 벽난로 주변에 걸쳐두고 나갈 준비를 했다.
평소 학교에서 입고 다니는 옷이 아닌 조금 더 두껍고 색이 어두운 옷을 입고 겉이 잘 젖지 않는 소재로 된 망토를 입은 뒤 귀마개를 바로 하고 모자를 쓰기 전 맥고나걸은 서랍에서 반지 케이스를 꺼냈다.
반지 케이스에서 반지를 꺼내 들고 잠시 아무 말없이 바라보던 맥고나걸은 그것을 끼는 대신 마법으로 만들어낸 체인에 끼워 목에 걸었다.
목걸이가 된 반지를 옷 안에 잘 넣고는 목도리를 하고 모자를 쓴 다음 장갑을 낀 그녀는 벽난로 불을 작게 한 뒤에 방을 나섰다.

맥고나걸이 잠시 방에 들렀던 사이 눈송이는 더 굵어지고 양도 많아졌다.
그 때문에 호그스미드로 가는 길을 학생들이 지나간 발자국 위로 눈이 쌓여 발자국들이 보이지 않았다.
맥고나걸은 굵은 눈송이들이 날리는 길을 망설임 없이 내려갔다.
눈을 마법으로 녹이지 않고 하얀 평원 위에 그대로 발을 디뎌 발자국을 만들었는데 긴 옷자락으로 눈 위를 쓸어 발자국을 지웠다.
바람에 망토가 부풀었다가 뒤로 날렸다.
모자가 날아가지 않게 한손으로 붙잡고 호그스미드와 호그와트의 중간에서 학교를 한 번, 호그스미드를 한 번 바라본 맥고나걸은 무언가를 결심한 듯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어라..? 맥고나걸 교수님이다!"
"어디 어디?"

한편 먼저 나가 허니 듀크에 갔던 해리, 론, 헤르미온느는 따뜻한 가게 안에서 사탕을 우물거리고 있다가 결루가 끼어 하얀 창문 너머로 맥고나걸을 발견했다.
팔짱을 낀 채 홀로 걸어오는 그녀를 본 세 사람은 손으로 결루를 지우고 그녀가 어디로 가는지 눈으로 쫓았다.
어떤 의도를 가진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스럽게 어디로 가는지 본 것이었다.
항상 호그스미드에 올 때마다 들리는 스리 브룸스틱스로 가는줄 알았는데 맥고나걸은 그곳을 그냥 지나쳐서 걸어갔다.
그에 세 사람의 눈이 커졌고 얼른 허니 듀크를 빠져나와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학생들과 교수들이 자주가는 가게들을 지나쳐 몇 없는 주택가를 지나가는 맥고나걸의 발걸음엔 거칠 것이 없었다.
세 사람은 어느 순간부터 투명 망토를 뒤집어쓰고 쫓아가고 있었다.
헤르미온느가 뒤에 남는 발자국들을 지워가며 쫓아갔다.

"하아...."

오래 관리를 안한 것 같은 오두막집 앞에 잠시 멈춘 맥고나걸은 그제야 시선을 들고 집을 올려다봤다.
여기저기 기울고 내려앉은 것이 오래 사람이 살지 않은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세 사람은 그 집에서 좀 떨어진 나무 뒤에 숨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 오늘 외출하는 날이었지 참... 내 정신 좀 보게.'
'미리 나가있는다는 것이... 미안하오.'
'날이 이리 찬데... 아무리 가까워도 그렇게 얇게 입고 다니다간 감기 걸린단 말이오!'

집을 보고 있자니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녀의 기억 속 목소리, 그녀의 기억이 만든 환청-

휘오오오

오로지 바람이 오두막집의 정원을 쓸고 지나가며 쓸쓸한 소리를 냈다.
바람에 떨어지던 눈송이들도, 쌓여있던 눈송이들도 회오리치며 솟구쳤다가 천천히 떨어졌다.

"오늘은 잘 챙겨 입고 나왔어요..... 앨핀."

맥고나걸은 작게 중얼거리며 집을 바라봤다.
그녀가 짧은 기간 지냈던 곳이었다.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해준, 그녀 역시 사랑할 수 밖에 없었던 그와 함께 행복하게 살았던 곳이었다.
많이 망가지고 무너진 모습이었지만 눈길이 닿는 곳 어디든 그와 함께 했었던, 때때로 찾아와서 며칠씩 지냈던 남동생들의 아이들과 함께 했었던 추억들을 되새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당 한켠에 놓여 있던 테이블과 의자.
그곳에 앉아 조카들이 뛰어노는 것을 봤었다.
솜씨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직접 만든 쿠키와 음료를 테이블 위에 올려다 놓으면 막내가 제일 먼저 달려와 내 무릎에 매달렸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쿠키를 물려주면 어느새 큰 아이들도 몰려와서 간식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아이를 귀여워하던 앨핀은 아이들과 잘 놀아줘서 인기가 좋았었다.
아이들과 뒤섞여 놀다가 얼굴에 흙을 묻히고 돌아보며 개구지게 씨익 웃는 모습을 보면서 어쩔 수 없는 사람이라며 웃었었다.
밤이 되면 마당에 아이들을 앉혀두고 별자리를 일러주며 천문학 시간에 배웠던 내용들이나 이야기들을 해주기도 하고 불꽃놀이를 보여주기도 했었다.
패트로누스를 불러내서 보여주면 신기해했었다.

그러면서도 만약 그와 일찍 만나 결혼해서 우리 사이의 아이가 있었더라면 그는 참 좋은 아버지가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쉬움과 미안함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앨핀은 그 생각에 지금도 자신은 충분히 행복하다며 그런 생각 말라고 웃으며 말해줬었다.
그래서 더 고맙고 미안했었다는 것을 그는 알까...

조카들이 없는 주말이면 체스판을 가져와 체스를 두며 작게 실랑이를 벌였고 가끔 심각하게 싸우다가 마지막에 누가 이기든 서로의 얼굴을 보며 피식 웃는 것으로 끝났다.
가끔 알버스나 포모나, 필리우스가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고 스리 브룸스틱스의 여주인인 로즈 메르타가 찾아올 때도 있었다.
그럼 그날 저녁은 알버스가 해주는 웃긴 이야기를 들으며 다들 가벼운 분위기에서 즐겁게 먹고 마셨었다.

울타리 대문 옆 우체통.
우린 마법사라서 부엉이들이 배달해주는데 왜 굳이 우체통을 만드냐는 내 말에 머글들은 집 앞에 다 이것을 설치해두지 않냐면서 가끔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 같아서 그런다고 대답했었다.
하지만 만드는게 영 엉성해서 불안불안하게 보고 있었는데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망치로 엄지 손가락을 치고 말았었다.
완성된 결과물은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 기울어진 상자였고 대부분의 경우 사용되지 않았었다.
하지만 알버스만은 항상 거기로 편지를 보내서 앨핀은 뿌듯해하며 사용후기가 어떻냐고 물어봤었다.
나는 그가 그럴 때마다 일부러 장난스럽게 불편하다고 말해서 그가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것을 봤었다.
사실 알버스 외엔 그것을 처음 본 누구도 우체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 내 놀림은 아주 근거없는 것은 아니었다.

거실 창문 아래 산딸기나무는 어느날 연락도 없이 찾아왔던 리무스가 준 것이었다.
결혼식 때도, 그 다음에 찾아왔을 때도 친구를 잃은 충격에 많이 혼란스럽고 괴로워 보였었다.
그리고 늑대인간이란 것 때문에 그 때까지도 어디에 섞이지 못하고 부유하고 있었다.
생각할수록 안쓰러운 그 아이를 그가 싫어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했었지만 그는 어떤 거부감도 보여주지 않고 오히려 그 아이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래서인지 리무스는 1년에 몇 번씩 우리집에 발걸음을 했었다.
올 때마다 작은 선물들을 들고 오더니 한 번은 가을에 어린 산딸기나무 묘목을 가져와서 울타리 대문이 보이는 거실 창문 아래에 직접 심어줬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앨핀의 보살핌 아래 1년만에 엄청나게 번식해서 다음해 여름 커다란 통으로 두통이나 수확할 수 있었다.
한통으로는 앨핀이 술을 담가보겠다며 가져가 술을 만들었고 한통은 교수들과 주변 주민들에게 나눠주고도 많이 남아서 조카들이 먹을 머핀과 과자에 들어가기도 했고 생으로 먹기도 했었다.
리무스도 먹어보고는 어디서 났냐고 물어보길래 네가 작년에 가져온 것이라 했더니 그 침착한 아이가 깜짝 놀라면서 당황하기도 했었다.
그 때 앨핀이 선물을 하고서도 까맣게 잊어버린 거냐면서 리무스를 놀렸고 리무스는 잔뜩 당황해서 그게 벌써 이렇게 자랄 줄은 몰랐다고 했었다.
그 대답에 앨핀은 자랑하듯 다 자신이 잘 키워서 그런거라고 했었다.
익살맞고 장난스러운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왠지 리무스 보기 부끄럽기도 했었지만 리무스는 빙그레 웃으며 그의 자랑에 맞장구 쳐줬었다.
조카들 앞에서 보여주던 악동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그를 못 말린다 생각하면서도 그 다운 것이라며 인정하고 있는 날 발견하고 피식 웃었던 일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해 앨핀이 담근 산딸기주는 정말 맛이 좋아서 인기가 좋았었다.
그 술은 지인들과 함께했던 새해 첫날 해맞이 때 다 마셨었다.

지인들과 함께 저녁을 먹었던 부엌, 동생들과 조카들이랑 모여앉아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거실, 차와 커피를 마시며 음악을 들으며 각자의 취미생활을 했던 응접실, 내가 과제를 검사하고 시험문제를 내는 것을 도와주던 서재, 하루를 마무리하며 침대에 나란히 누워 서로에게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 같이 잠들고 깼던 안방, 부활절, 할로윈, 크리스마스 등 각 시즌 때마다 작은 파티가 열렸던 집 뒷편 정원.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들이 생생히, 하지만 색이 바랜 듯 따스한 햇빛의 색으로 살아움직이며 무너져가던 오두막집은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울타리 대문에 서있는 자신의 주변을 과거와 똑같은 모습으로 스쳐가는 이들은 유령처럼 투명했지만 환영처럼 손이 닿으면 사라졌다.
손을 뻗으면, 그래서 그 때와 똑같이 말을 하면 돌아올 것만 같은데 사라져버리는 것들을 보며 맥고나걸은 살짝 들었던 손을 내렸다.

학교가 끝나고 저녁 무렵 집으로 올 때 앨핀은 항상 나를 마중나왔었다.
가끔 마중나오지 않는 날도 있었지만 마중을 나오건 나오지 않건 집 굴뚝 위로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그 연기가 늘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그가 마중을 나오지 않는 날은 몸이 안 좋거나, 바쁜 일이 생겼거나, 무언가에 집중해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있었다거나, 조카들이 왔을 때였다.
그래도 항상 내가 오면 집 밖으로 얼른 나와 반갑게 맞이했었다.
가끔 심심하면 그가 학교로 찾아와서 교정을 같이 거닐기도 하고 학교에서 집까지 같이 걸어오기도 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날이 차면 학교에서 집까지 가까워서 대충 입고 나온 나를 항상 걱정 섞인 말로 타박했다.
그러면 나는 괜찮다는 말과 함께 다음부턴 잘 챙겨입고 오겠다는 말로 그의 걱정을 피했지만 한 번도 그 말을 지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내게 앨핀은 항상 못 말린다고 말하며 고집불통이라고 불렀었다.
다정한 그의 눈동자 안에 섞인 걱정과 어쩔 수 없다는 웃음기가 섞인 작은 체념, 그리고 부드러운 애정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타박을 멈추게 하는 법도 잘 알았다.
그의 볼에 살짝, 아주 살짝 입을 맞추고 다음엔 꼭 챙긴다고 하면 잠시 굳었다가 풀리면서 멍한 목소리로 고양이가 아니라 여우라고 중얼거리면서 딱 한 번 마지막으로 꼭 챙기라는 말을 했었다.
그에 항상 나는 웃으면서 알겠다고 대답하며 집으로 같이 들어갔었다.

그렇게 다정했던 그였기에 가만히 멈춰서서 눈발을 맞은 채 서 있는 그녀를 보고 당장이라도 달려나올 것만 같은데 그 사람은 이제 없었다.
그리움에 젖었던 그녀의 초록색 눈동자가 깊은 어둠에 잠기며 눈꺼풀 아래로 사라졌다.

여름날, 노을, 피웅덩이, 힘없이 늘어진 몸.
그를 휘감은 거대한 식물의 줄기, 줄기, 줄기....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 여기저기서 눈물을 찍어내는 하얀 손수건.
파여진 구덩이, 회색의 화강암, 죽은 자를 위로하는 노랫소리...

마지막을 떠올리자 따스한 빛으로 탈색된 추억들은 사라지고 다시 다 쓰러져가는 눈이 쌓인 오두막집이 드러났다.
나이를 먹어 깊이 파인 그녀의 눈주름이 파르르 떨렸다.
무언가 할 말이 있지만 애써 참는 것처럼 입을 꾹 다물고 맥고나걸은 눈을 감은 채 자신의 두 손을 꽉 맞잡고 있었다.

"뭐하고 계신거지?"
"쉿! 조용히 해 론."

어깨 위에 하얗게 눈이 쌓인 것이 멀리서도 보일만큼 오래 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맥고나걸을 지켜보던 론이 참지 못하고 작게 묻자 헤르미온느가 얼른 그의 입을 막았다.
충분히 떨어져서 들릴리도 없건만 헤르미온느는 기겁을 하며 단속했다.
헤르미온느에게 발을 밟힌 론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그녀를 원망스런 눈으로 쏘아봤지만 헤르미온느는 그에게 시선을 두고 있지 않았다.
해리도 헤르미온느도 맥고나걸에게 집중하고 있자 론은 나지막히 구시렁 거리더니 인상을 쓴 채로 두 사람처럼 맥고나걸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해리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맥고나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리의 에메랄드빛 눈동자에 뭔가 알 수 없는 것들이 스쳤다.

맥고나걸은 긴 침묵 끝에 천천히 눈을 떴다.
반쯤 뜬 눈에 누구도 밟지 않은 하얀 눈이 쌓인 마당이 들어왔다.
장례식 이후 사흘만에 집을 정리하고 호그와트의 방으로 돌아간 뒤로 한 번인가 와보곤 오질 않았던 집을 다시 한 번 바라봤다.
10여년이 흘렀는데도 딱 한 번 왔었던 때와 똑같이 바로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는 추억에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다만 그 때와 다른 점이라면 그 때는 그 추억과 상실의 슬픔을 못 견뎌 도망쳤다는 것이고 지금은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 달랐다.

아마도 가장 먼저 쓰러졌을 울타리가 있던 자리를 보던 맥고나걸은 무언가를 발견하고 허리를 숙였다.
눈 속에 묻혀 있음에도 주변과 달리 조금 솟아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쌓인 눈을 손으로 털어내던 맥고나걸은 멈칫했다.
어설프게 못질 되어 있는 투박한 나무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앞에 달려 있었을 문은 어디론가 떨어져 버리고 없었지만 분명 그것은 앨핀이 지난날 만들다 손을 다친 그 우체통이었다.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한참 우체통을 들여다보던 맥고나걸은 품에서 지팡이를 꺼냈다.

지팡이를 꺼내들고 일어난 맥고나걸은 허공에 몇 번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세 사람은 그녀가 대체 무엇을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해 갸웃하다가 허름했던 오두막집이 반듯해지고 없던 울타리가 생겨나자 무엇을 했는지 알아차렸다.

"오두막집을 고치시네?"
"내 생각이 맞다면... 아마도 저기가 교수님이 결혼생활을 했던 곳일거야."

론이 번듯해지는 오두막집을 보고 멍하니 중얼거리자 헤르미온느가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연 지금 교수님은 어떤 마음으로 집을 고치고 계신 것일까...'

조금도 짐작할 수 없는 깊이의 마음의 고통을 헤아리려고 하는 헤르미온느의 미간에 잡힌 주름은 펴지질 않았다.
아무리 그녀가 어떤 마음인지 감을 잡을 수 있어도 실제로 얼마만큼을 느끼고 있는지는 조금도 판단할 수 없었다.
맥고나걸이 어디에도 기대려고 하지 않고 홀로 걸어가려는 사람이란 것을 그동안 지켜보며 알았기 때문에 헤르미온느는 그녀가 너무 곧아서 부러져버리는 대나무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자신의 안에 감춘 채 스스로 모든 것을 감당하려고 하는, 강인하다는 말로 자신을 포장하고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에게 공평하고 엄격하게 대하면서도 진심으로 부딪치며 다정한 걱정을 아끼지 않는, 하지만 일정한 선을 그은 채 거리를 두려고 하는 맥고나걸의 아픔을 본 지금, 그것을 감히 헤아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제대로 다 아는 것도 아니고 아주 단편적인 부분만 알고 있는 그들로서는 감히 내릴 수 없는 판단의 영역이었다.
지금 이렇게 몰래 숨어서 지켜보는 것마저도 죄스럽지만 돌아가기도 애매했기에 계속 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

맥고나걸은 입김만을 간간히 내뱉으며 기억 속 모습과 똑같이 돌아간 오두막집을 바라봤다.
시선을 내리다가 자신이 서 있어서 닫히지 않은 울타리 대문을 보고 뒤로 한 발짝 물러서자 문이 닫히고 우체통이 똑바로 섰다.
원래대로 돌아온 집을 말없이 바라보던 맥고나걸은 몸을 돌려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어...! 교수님 가신다!"
"이제 그만 가자... 더 보는 것은 실례..."
"아니."

론이 맥고나걸이 움직이는 것을 알리며 따라가려고 하자 헤르미온느가 얼른 그의 팔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해리는 그녀의 말을 끊으면서 성큼 맥고나걸의 뒤를 따랐다.
투명망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해리의 뒤를 쫓아가는 헤르미온느의 표정은 이해할 수 없다 였지만 해리는 두 사람을 돌아보지 않고 오롯이 맥고나걸의 등만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대체 왜 그러는거야, 해리!"
"쉿. 조용히 하고 따라와줘. 헤르미온느."
"....하아.... 몰라. 이거 다 너 책임이야."

헤르미온느의 항의에 해리는 손만 뒤로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고 헤르미온느는 작게 분통을 터트리면서도 착실히 자신들의 발자국을 지워나갔다.
맥고나걸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곳 안으로 들어갔다.
세 사람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돌담 너머로 안쪽을 살펴봤다.
눈이 쌓인 안쪽엔 크기가 다양한 돌들이 질서 정연하게 서 있었다.

"여긴...."
"묘지야..."

굳이 가서 확인해보지 않아도 확실히 알 수 있는 장소에 세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중앙의 종탑을 중심으로 정확하게 구역이 나뉘어져 있었다.
맥고나걸은 종탑에서 서쪽으로 좀 떨어진 작지도 크지도 않은 비석 앞에 섰다.
회색이지만 검은색, 흰색이 섞여 반짝이는 화강암으로 된 뚜껑과 비석 위엔 하얀 눈이 쌓여 있었다.
눈이 가리지 않은 부분에 드러난 글자는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려주고 있었다.

'앨핀스톤 어콰르트 여기 잠들다.'

비석을 잠시 내려다보던 맥고나걸은 천천히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비석 위에 쌓인 눈을 손으로 밀어 치우고 가만히 들여다보던 맥고나걸은 지팡이를 꺼내 휘둘렀다.
그러자 붉은 다알리아 꽃과 리시안셔스 꽃으로 된 꽃다발이 무덤 위로 가볍게 내려 앉았다.

"......그동안 안 와서 미안해요. 이제야 찾아와서..."

호그와트 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오지 않았었다.
그가 죽고 기일에는 항상 찾아왔지만 그 외엔 없었다.
찾아와서도 짧은 인사를 한 뒤엔 무언가에 쫓기듯 빨리 자리를 떴었다.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무덤을 보며 맥고나걸을 지팡이를 도로 넣었다.

한참 뭐라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하릴없이 입술을 깨물며 말을 하지 못하길 수차례...
말을 하려고 입을 연 순간 터져나오는 입김들이 소리가 되지 못한 그녀의 말을 대신하듯 입 밖으로 나왔다가 허무하게 사라졌다.
맞잡고 있던 두 손 중 밑에 있던 손에 주먹을 꽉 쥐며 맥고나걸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젠... 오래 되어서 그 때를 떠올려도 눈물 같은 건 나오지 않네요."

나직나직한 그녀의 목소리가 바람마저 고요한 묘지에 울렸다.
돌담 너머에서 듣고 있는 세 사람의 귀에도 똑똑히 들리는 그 목소리는 정말로 그 말의 내용과 똑같게도 평소의 것과 같았다.

"당신이 내 곁을 떠난지도 10년이 지났어요. 내 일상은 달라진 것이 없죠. 매일같이 호그와트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자신의 일상을 말하는 맥고나걸을 세 사람은 숨 죽인 채 지켜보고 있었다.
굵기를 더해가며 계속해서 내리던 눈마저도 점점 그쳐 이젠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조용한 묘지 위로 맥고나걸의 말이 내려앉아 쌓여갔다.

세월에 닳고 닳아, 스스로 무뎌지려 애를 써서 이젠 담담해졌다는 말과 함께 밖으로 표현된 감정이 여리게 흔들리며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마치 탈색되어 제 빛을 잃은 색 같은 그 감정은 세 사람의 마음에도 차분히 깔렸다.
하지만 하나하나 끄집어져 나오는 감정들이 늘어날수록 내려앉아 쌓이는 감정들은 뾰족해졌고 제 색을 찾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뚝 하고 떨어져내린 물방울이 쌓인 눈을 녹이며 자국을 남겼다.
비가 내리지도 않는데 비석 앞에 정확히, 맥고나걸이 무릎을 굽히고 앉아 있는 그 자리에 떨어진 한 방울의 물방울은 그녀의 눈에서 나온 것이었다.
넘칠 듯 사라질 듯 아슬아슬하게 일렁이는 눈물 탓에 맥고나걸의 눈동자가 이지러져 보였다.
일렁이다가 밀려 떨어진 한 방울이 두 방울이 되고, 결국 그녀는 애써 담담한 척 자기 최면을 걸어왔던 말들을 멈추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눈을 치우느라 얼어붙은 장갑의 손바닥 위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맥고나걸을 위해서인지 바람도 불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나.... 계속 도망치고 있었어요. 당신의 죽음으로부터, 당신이 내게 주었던 것들로부터.... 당신과 함께했던 것들을 부정하고 있었어...."

흐느낌 사이로 맥고나걸이 토해내듯 말했다.
무릎을 꿇은 채 앉아 흐느끼는 그녀의 모습은 그녀에게서 처음 보는 너무나도 약한, 인간적인 모습이었다.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이 없었던 그 모습에 세 사람은 훔쳐보기를 멈추고 돌담 아래에 쭈그리고 앉았다.
가자고 말하는 헤르미온느가 있었지만 해리는 한사코 그자리에 남아있기를 바랬다.
돌담에 등을 기대고 앉아 돌담 너머로 들려오는 흐느낌 소리와 드문드문 섞여 들려오는 발음이 뭉개진 말소리를 들으며 세 사람은 전해오는 깊은 슬픔에 전염되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젠 시간이 지났으니 괜찮다고 말하고 살았어요... 사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은데.... 당신이 죽었을 때부터 괜찮다고만 말하면서 피했으면서... 필사적으로 당신에 대한 것을 떠올리는 것을 참아왔어요. 그 감정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야만 한다.
적어도 그렇게 보여야만 한다.
절대 흔들려선 안 된다.
무너져선 안 된다.
약한 모습 보이면 안 된다.
억지로라도 이렇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분명히 괜찮아질테니까.

하지만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무뎌지겠지 했던 것은 저러한 생각들뿐...
습관으로 굳어버린 강박관념에 의해 생활을 하면서 점점 지쳐만 갔다.
울컥하고 가끔 치밀어 올라올 때면 한켠으로 미뤄두고 보지 않으려고 했다.
없는 것처럼 취급하려고도 했었다.

애초에 제대로 마주하지 않은 상처와 수습하지 못한 슬픔과 절망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고 방치했기에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덧나고 커져서 미뤄둔 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그 상처를 마주하는 것이 큰 각오를 필요로 할 만큼 변해있었다.
마주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주하면 무너지게 될까봐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랬기에 언제나 늘 노심초사, 폭탄을 안고 사는 기분이었다.

차라리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면, 기억하지 못한다면, 없던 일이었다면 하고 바란 적도 있었다.

"당신이 나랑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랬더라면 그렇게 죽지 않았을 거라고... 조금 아슬아슬하긴 해도 우린 아마 지금도 편안한 친구사이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죠."

눈물 젖은 얼굴을 들며 맥고나걸이 입을 열었다.
짙은 후회와 그리움을 드러낸 그녀의 초록빛 눈동자가 선명한 감정을 담고 흔들렸다.

"내가 그 전날 들어오다가 그것 때문에 놀라지만 않았더라면 당신이 그것을 없애려고 하지 않았을 거라고... 날 얼마나 탓했는지 몰라요. 그리고 당신을 죽게 만들었던 그것, 베네무스 텐타큘라가 얼마나 싫고 원망스러웠는지 몰라요."

그녀의 말에 섞인 한 단어에 밖에서 듣고 있던 세 사람은 헛바람을 들이쉬었다.
이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져서 그들의 머리를 한대 세게 치고 가는 깨달음이 있었다.

"모든게 나 때문이라고 말하면서도... 그것 때문에 당신이 죽었다고 원망했죠. 참 웃기게도 말이에요-"

흐느낌이 남아 흔들리는 목소리로 재밌다는 듯 자조섞인 웃음을 픽 하고 지은 맥고나걸이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애매한 얼굴로 바닥을 봤다.

필사적으로 자신의 고통을 숨기기 위해 노력하던 그 때...
겉으로 완벽하게 연기할 수는 있었지만 혼자 있는 순간이면 완벽한 연기가 깨져 버렸다.
슬픔과 절망과 함께 잃어버린 행복의 빈자리에서 오는 공허라는 감각을 잊기위해, 내일 또 완벽한 자신을 연기하기 위해 억지로 묻어버리려고 하는 것과 동시에 스스로를 질책했다.

앨핀이 죽은 것은 순전히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전날 갑자기 일이 생겨 앨핀이 마중을 못 나왔었다.
대문 밖에서 창문 안쪽을 들여다보니 뭔가에 열중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여 오늘은 조용히 들어가 놀래켜주리라 하고 조심조심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옆에서 뭔가가 달려들었고 반사적으로 지팡이를 뽑으면서도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베네무스 텐타큘라란 것을 확인하고 인센디오 주문을 써서 기절시키는데 주문을 비명처럼 내지르고 말았다.
비명같은 주문 소리에 놀라 달려나온 앨핀이 털썩 주저앉은 자신을 부축해 일으켰다.
놀란 자신을 달래느라 앨핀은 그날 저녁 텐타큘라를 제거할 시기를 놓쳤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에 텐타큘라를 제거할거라고 말하기에 저녁에 학교 다녀오면 같이 하자고 말했었다.
앨핀은 그러겠다고 했지만 왠지 이상하게도 안심이 안 되어 몇 번이고 기다리라고 말하고 출근을 했었다.

그리고 그 날 퇴근을 하고 돌아와보니 일이 벌어져 있었다.
혼자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에게 혹시 모를 위험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 였는지 정확한 이유는 아직도 알 수 없었다.
저녁 때 학교로 오겠다고 했는데 안 와서 이상하다 생각하며 마을로 내려왔는데 그가 보이질 않았다.
그 순간 아침의 대화가 떠오르고 왠지 모를 불안감에 서둘러 집으로 달려가보니 정원에 피웅덩이가 흥건했다.
여름 저녁이라 길게 늘어진 노을 위로 후덥지근한 공기 탓에 눅눅한 피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피웅덩이와 까맣게 탄 잔디들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울타리 안쪽 마당에 힘없이 쓰러진 앨핀의 위로 거대한 식물 형태의 괴물이 두 개가 올라타서 줄기로 그의 몸을 휘감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빨이 그의 몸에 박혀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안 돼-! 인센디오!'

이상하게도 그 순간엔 굉장히 급박했던 것 같은데 돌아보는 지금은 굉장히 느리게 느껴졌다.
불이 닿자 줄기들을 회수하며 툭하고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는 텐타큘라들을 멀리 차내고 얼른 달려가서 그를 안아들었다.
목을 물어뜯겨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소매로 목을 눌러 지혈하며 집에 항상 두었던 디터니 원액을 아씨오로 가져왔었다.
창백해진 안색과 힘없이 풀리려는 것을 억지로 억지로 부여잡고 있는 눈동자로 날 바라보며 뭐라고 말을 하려는 앨핀을 막으며 용액을 상처들에 떨겼다.

'....미네.....미네르바...'
'앨핀... 괜찮아요... 그러니까 제발...'

자꾸만 떨려오는 손에 약들이 자꾸 상처 주변으로 떨어졌다.
상처는 아물어가는데 앨핀은 기운을 차리질 못했다.
어떻게 해야할지 조금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침착하려고 애를 쓰지만 미친듯 뛰어대는 심장에 자꾸 생각이 멈췄다.
겨우 생각해낸 병원으로 가야한다는 것을 실천에 옮기려는데 앨핀이 손을 잡아왔다.
파르르 떨리는 차가운 손가락에 잡힌 손을 봤다가 그를 돌아보니 창백한 안색에 마치 바람에 꺼질 촛불처럼 위태로운 얼굴로 웃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얼굴을 보는 순간 쿵 하고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누가 말해주지 않았지만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그러나 그 생각이 들자마자 부정했다.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되뇌는 내 손을 꼬옥 잡아 다시 자신에게 시선을 맞춘 앨핀은 힘겹게 한 마디 한 마디 하기 시작했다.
거칠게 몰아쉬는 숨소리와 자꾸 새어나가는 목소리가 안타까웠다.

'.....당신이 오기 전에.....끝내려고 했는데.....미안...하오...'
'어째서... 어째서!!! 같이 하자고 했었잖아요...! 내가 하지말라고... 기다리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왜!!'

그의 말에 참고 있던 것이 터져버렸다.
화낼 상황이 아니었는데, 적어도 그가 상처가 치료되서 입원해 있을 때에 했었어야 하는데 엉망이 되어버린 사고회로는 평소와 다르게 떠오르는 것을 그대로 내보내 버렸다.
내 자신이 왜 화가 나는지, 왜 이러는지도 냉정하게 생각하지 못하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자신을 잃어버려서 놓쳐버리고 말았다.

만약 그 때 그 말을 하지 않고 병원으로 데려갔었더라면...
그랬더라면 어쩌면 그는 아직도 내 옆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지금이야 그랬더라도 그는 죽었을 것이란 것을 알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를 탓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면 적어도 그 때 그렇게 그에게 화를 내지 말고 그가 하려던 이야기를 들었더라면 지금 이처럼 후회하진 않을텐데 라는 생각도 했다.
잃어버리는 것이 그토록 두려웠던 소중한 사람인데, 다정했던 사람인데...
그 사람의 말을 더 듣고 그 사람에게 표현하지 못했던 말을 해줬더라면... 그랬더라면....

그 순간을 돌아보면 끝없는 후회의 반복이었다.
이런 날 알고 있었던 것인지 앨핀은 떨리는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며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 했었다.
대체 언제부터 울고 있었던 것인지도 몰랐는데 그의 엄지 손가락이 눈물을 닦아내는 순간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미안하오... '
'.....앨핀....!'

서서히 감기는 그의 눈을 본 순간 정신이 들었다.
아직 안 된다고, 이럴 수는 없는 거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당신을 만나서.....행복했소. 진심으로....사랑ㅎ.....'

곧 꺼져버릴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하던 그의 손이 툭 떨어졌다.
잠시 멍하게 그 모습을 보던 난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러봤지만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제서야 나오지 않던 말들이 터져 나왔다.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쏟아져내리는 눈물과 잔뜩 헝클어져버린 말을 토해내며 절규했다.

그리고 언제 온건지 알 수 없는 알버스와 마을 사람들이 내 주변에 와있었다.
다른 교수들도 뒤이어 도착했었다.
알버스는 내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으로 자신을 알렸고 그 때까지 아무것도 못 알아차린 나는 그를 보고 그에게 매달려버리고 말았다.
내게 손수건을 건네며 말없이 토닥이는 것으로 달래주던 알버스는 날 대신해서 장례식을 준비했고 다른 사람들도 슬퍼하며 도와줬었다.

그리고 그날 울다가 쓰러져버린 나는 그 후로 장례식 내내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왔다.
장례식 이후 한동안은 혼자 있을 때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고 웃다가 결국엔 눈물로 지새운 밤도 많았었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끝이 없는, 하면 할수록 점점 늘어만 가는 후회와 자책에 어느 순간부터 그것마저도 안 하고 외면하고 잊으려하며 지내왔다.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거짓된 말을 하며 무뎌질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등 뒤의 어둠을 숨겨왔다.

무뎌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감정이 무뎌진 것도 있었지만 그 순간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해 또 다른 감정을 생산했다.
그래서 아예 생각을 멈춰버리고 숨기고 묻어버린 뒤 도망쳤다.
스스로에게 자기 최면을 걸며 살아왔는데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무뎌지는 것은 감정이나 상처가 아니었다.
그것들이 무뎌지는 것의 배의 속도로 스스로한 거짓말이 무뎌졌다.
닳고 닳고 닳아서 점점 지쳐만 가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엔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정말로 괜찮아진 것이 아니라 매일을 힘겨워하다보니 그것마저 익숙해져 버린 것이었다.
익숙해진 그 고통은 조용히 깊은 곳에 가라앉아 더 이상 힘들게 하지는 않았지만 작은 불씨 하나에도 터져버리는 위험천만한 폭탄으로 변해갔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리던 맥고나걸의 입이 열리고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신은 내가 용감한 사람이라 말했죠. 하지만 난 그저 고집불통에 바보같은 평범한 사람일 뿐이에요. 다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제서야.... 이제서야 마주할 각오를 세웠으니까요. 사실 오늘도 쉽지는 않았어요. 그렇지만 계속 묻어둔다고, 모르는 척한다고, 도망친다고 해서 해결될 일도 아니고... 후회해봤자 나 자신만 더 괴로워질 뿐이란 걸... 그리고 그것을 당신이 바라지 않을 것이란 것을 진심으로 깨달았으니까요."

흐느끼던 어깨가 차분히 가라앉고 흘러넘치던 눈물이 점점 줄어들었다.
품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볼을 타고 흘러내리던 눈물을, 세월에 깊이 파여진 주름을 타고 흐르던 눈물방울들을 닦아내는 맥고나걸의 동작은 단정하고 담담했다.
평소의 그녀처럼 의연한 모습으로, 하지만 한층 더 개운한 느낌으로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당신은 항상 나 때문에 행복하다고, 내가 당신에게 주는 것이 많다 말했죠. 하지만 사실은 당신이 내게 더 큰 행복이었고 주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러니까 더는 부정하면 안 된다.
행복했던 순간마저, 내가 그토록 되돌리고 싶어하는 그 때 그 시간들을 부정하면 안 된다.
소중하다 말하면서 내 스스로 부정하고 지워버리려는 그런 모순을 더는 만들어선 안 된다.

해리, 론, 헤르미온느, 네빌이 보고 있던 책과 포모나의 이야기에서처럼 언제든 기억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인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언제까지고 눈을 돌리고 숨을 수 없었다.
알버스의 말처럼 한 번은 부딪쳐야 했다.
그래서 그날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몇날 며칠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리고 드디어 결론을 내렸다.

아마 앞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이 마음을, 이런 모습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전과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미네르바.... 후회란 말이오... 덧없는 꿈과 같은 것이오. 수없이 부풀려진 만약이란 가정 속 자신이 원하던 결말을 바라는 것이지. 지금 후회하고 있는 일에 대해 그 때와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 때도 이런 결말, 이런 후회를 안 하고 있을까? 아니지. 다른 선택을 해서 다른 결말이 나왔다고 해도 또 다른 후회를 하고 있을 것이고 같은 결말이 나왔다면 또 지금과 똑같은 후회를 하고 있었을 것이오. 인간이란 그런 생물이란 걸 당신도 아마 잘 알고 있잖소. 후회가 덧없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아시오? 바로 후회를 하는 사람 본인이오. 인정을 안할 뿐이지. 눈을 감고 진짜 봐야할 것을 보지 않고 꿈에 빠져들어 자기자신을 파괴하는 것... 그것이 후회요. 그리고 자신을 파괴하는 길이란 것을 알면서도 후회를 하는 것이 인간이고....'

언제인가 소망의 거울 앞에서 만난 알버스가 해주었던 말이었다.
그 말을 고민으로 밤을 지새우던 어느날에 떠올리고 그제까지 말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진심으로 납득하지 않았던 것과 지금까지의 자신을 깨달았다.

"......그림자를 떼어낼 수 없는 것처럼 이미 일어난 일을 돌이킬 수 없죠. 그림자가 없는 척 하고 언제나 예민하게 날을 세우고 사는 것은 강한 척 하는 것 뿐이었어요. 진정으로 강하다는 것은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더군요. 남에게 이런 사실을 밝히지 않더라도, 겉으로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더라도 없는 척 하는 것과 인정하는 것은 다른 거잖아요."

극복했다고 하더라도 아프고 슬픈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억지로 묻어두고 예민하게 지내다가 누군가가 던진 돌에 맞아 죽는 개구리처럼 우연한 계기로 터져서 감당하지 못하는 것보다 나았다.
그래서 마주하고 한 번은 제대로 해결을 봐야할 것 같아서 정리하려고 온 것이었다.

다시 떠올리고 아프고 슬프고 괴롭고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무작정 덮어두었던 때보다 훨씬 개운하고 홀가분해졌다.
그동안 고민하며 생각했던 것들도 조금 더 명확해졌다.
무엇보다 지금까진 고통스런 기억이 먼저 떠오르고 그 기억들만 떠올랐다면 이젠 그런 것들보다도 행복했던 기억이 더 떠올랐다.
그 점이 가장 좋았다.

이렇게 돌아가더라도 앞으로 살면서 인간이니까 후회도 할거고 아파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그림자라고 생각하며,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그림자로 여길 것이다.
도망치지 않고 받아들이되 지금까지처럼 남에게 보여주진 않을 것이다.
받아들인다는 것이 모든 것을 남에게 열어 보여야하는 것은 아니니까...

지금까지처럼 자신이 만들어온, 지켜온 이미지대로 살아갈 것이다.
그림자를 데리고.
그가 말했던대로 강한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정리하는데 오래 걸려서 미안해요."

깊이 한숨을 내쉰 맥고나걸은 평소처럼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완전히 진정이 된 것인지 눈물도 흘리지 않았고 호흡마저 차분해진 맥고나걸은 두 눈을 감고 있었지만 평소의 분위기로 완전히 돌아와 있었다.
엄격하고 깐깐한 변신술 교수의 모습으로 돌아온 맥고나걸은 한결 밝은 얼굴로 가만히 바람을 맞고 있었다.

돌담 너머에서 한참 말없이 흐느끼는 소리만 듣던 세 사람은 진정이 된 것 같은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다시 일어나 빼꼼히 안을 들여다봤다.
반듯하게 앉아 있는 맥고나걸의 모습이 보이자 세 사람은 각자 물어뜯고 있던 입술과 손톱 등을 바로했다.

"이젠 정말 괜찮아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요."

천천히 감고 있던 눈을 바로 뜨며 맥고나걸이 말했다.
그녀의 눈동자는 더이상 어둠에 잠겨 있지 않았다.
선명하게 맑은 초록빛을 띄는 눈동자가 하얀 눈으로 덮인 세상 위에서 빛을 발했다.

"앞으로도 난 변함없이 지금까지의 내 모습대로 학생들을 가르치며 살거에요 앨핀. 당신이 나에게 항상 말해왔던 내 모습으로 말이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옷자락에 묻은 눈을 털던 맥고나걸이 빙긋 웃었다.

"이 말 하려고 왔어요. 앞으로 생각나면 자주 들릴게요."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깨끗해진 모습으로 묘지를 보던 맥고나걸이 아련하게 웃었다.

"정말로 당신이 내게 준 것은 말할 수 없이 많았어요. 조금 더 오래 같이 못한 것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걸요. 하지만 항상 내 곁에 있을 거란 말... 잊지 않았어요."

다정함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에 담긴 밝은 느낌과 진심, 따스함에 섞인 약간의 서글픔이 더더욱 듣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애틋하게 했다.
해리와 론, 헤르미온느는 그 말을 들으면서 가슴 언저리가 따끔하면서도 뭉클했다.

"행복했어요. 항상 고마웠고 사랑합니다. 앨핀. 나중에 또 올게요."

부드러운 목소리로 10여년 전 그날 했었어야 한다고 매일 후회했던 말을 마지막 인사로 건네며 맥고나걸은 천천히 돌아섰다.
10여년을 품어왔었던 짐을 풀어낸 맥고나걸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묘지를 나섰다.
많이 덜어냈다고 하더라도 아직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뒤로 물러서거나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일은 두 번 다시 없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미네르바 맥고나걸이란 사람은 고지식하고 강단이 있으면서도 고집도 있고 꿋꿋한 사람이었고 타인에게 엄격하고 깐깐한 만큼 자기 자신에게는 더 철두철미한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랬기에 지금처럼 고통을 마주하러 온 것이리라.
인간이기에 10여년이란 시간을 끌었지만 언젠가는 꼭 이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를 실행에 옮긴 그녀는 이제 전보다 더 의연한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었다.

마치 눈보라 치듯 내리던 눈이 맥고나걸이 묘지에 있는 동안 멎었다가 그녀가 다시 나서는 순간 또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바람도 없이 천천히 떨어져 내렸다.
차분하게 내리는 눈은 마치 따뜻하게 그녀를 안아주는 것 같았다.
소록소록 소리도 없이 쌓여가는 눈 위로 걸어가는 맥고나걸의 등을 보던 세 사람은 그녀의 등에서 망설임이나 미련 등이 보이지 않았고 뒷모습이 평소보다도 더 커보인다고 생각했다.

당당한 발걸음으로 걸어가다가 오두막집 앞을 지나며 잠시 멈췄던 맥고나걸은 피식 웃고는 걸음을 옮겼다.

"알버스... 설마 오늘도 늦지는 않겠지?"

한 잔 하기로 했었던 약속을 떠올리며 맥고나걸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은 과거 그 사건이 있기 전의 모습과 똑같았다.
지인들과 모임이 있어서 나가던 때의 장난스럽기도 하고 신이 난 것도 같은 그 모습과...

맥고나걸이 사라지자 해리는 얼른 투명망토를 벗었다.
그리고는 묘지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섰다.
헤르미온느와 론이 얼른 그 뒤를 따랐다.
맥고나걸이 앉아 있던 자리가 그대로 남은 비석 앞에 선 해리는 지팡이를 꺼내 마법으로로 꽃을 만들어냈다.
하얀 안개꽃 다발을 내려놓고는 가만히 비석을 보고 있었다.
헤르미온느와 론은 이걸 위해서 해리가 안 가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해리가 안개꽃을 내려놓자 둘도 서둘러서 하얀색의 꽃들을 만들어서 내려놨다.

'.....교수님도 소중한 가족을 잃어버리셨었어. 그리고 그 슬픔을 아직까지 간직하고 계셨고... 하지만 오늘 이겨내셨지.'

맥고나걸의 약한 모습을 처음 봤다.
놀랍기도 했지만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다.
그녀가 말했듯이 누구에게나 그림자는 있는 법이었고 해리 역시 그녀와 비슷한 그림자를 가지고 있었다.
각자가 가진 그림자는 남이 판단할 것이 아니었다.
눈으로 보이거나 짐작할 수 있는 크기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당사자 본인에 따라 크기가 다른 것이었다.
그렇기에 함부로 손을 대서도, 알아내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알더라도 모르는 척, 보고서도 못 본 척 해야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한 가지쯤은 있다는 것을 루핀은 지난번에 알려주려고 했던 것이리라...
하지만 알아버렸고 보이기 원하지 않을 모습과 가슴 깊이 묻어두었을 비밀까지 다 보고 들어버리고 말았다.

"이 일은 못 본 거로 하자. 모르는 일로...."
"그래."

해리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왠지 맥고나걸이 보여준 모습에서 그리핀도르의 자세를 본 것도 같았다.

'진정으로 강한 것은 그림자를 없애려고 하거나 없는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물론, 진실로 이럴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일테니까.





*******

"미네르바."
"왜요 앨핀?"

결혼한지 1년이 좀 지났을 무렵 여름방학 중 어느 햇살 좋은날
집 뒤편 정원에 앉아 책을 보던 맥고나걸은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흰색, 연분홍색, 연보라색, 보라색의 아름답고 소담한 꽃들로 이루어진 꽃다발이었다.
예상치 못한 꽃다발에 놀란 맥고나걸의 눈이 커졌고 그에 앨핀스톤은 크게 웃었다.

"갑자기 무슨 꽃을..."
"오늘이 결혼 1주년이란 거. 몰랐소?"
".....아...."

앨핀스톤의 말에 며칠 전 결혼 기념일이 얼마 안 남은 것을 달력에서 본 것이 떠오른 맥고나걸은 놀란 얼굴을 했다.

"이런... 오늘이란 걸 깜빡했네..."
"괜찮소. 그 덕에 이런 깜짝 이벤트도 해보게 되었으니 말이오."

자신에게 꽃다발을 안겨주고 사람 좋은 얼굴로 껄껄 웃는 앨핀스톤을 보던 맥고나걸은 꽃다발로 눈을 돌렸다.
낯이 익은 이 꽃은 분명...

"리시안셔스... 앨핀. 당신은 이 꽃을 참 좋아하나봐요."
"응?"
"결혼 전에 자주 선물하기도 하고 부케로도 썼으면서 오늘도 주는 걸 보니..."
"음... 좀 별로인가?"
"아니요. 향도 괜찮고 색도 예뻐서 좋아요. 그러고보니... 당신이 처음 내게 준 꽃인 프리지아도 향이 굉장히 좋았었는데... 당신 취향은 향이 좋은 꽃인가봐요?"
"당신한테 주고 싶은 꽃을 고르다 보니 자연히 향기가 좋은 꽃이 골라진 것 뿐이오. 당신은 향수를 안 쓰니까... 그리고 향기보다도 사실 더 우선한 것이 있는데 아직도 모르겠소?"

웃으며 그가 늘 하던 꽃선물의 공통점을 이야기 하자 앨핀스톤은 약간 서운하단 듯 말했다.
그에 맥고나걸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그게 뭔데요..?"
"하아... 정말이지... 보통 꽃다발을 선물하면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있잖소."
"가장 먼저 보는 것...? 으음... 아 설마... 꽃말...?"
"그렇소. 프리지아의 경우엔 꽃말 때문이 아니라 그 때 가장 예쁜 꽃이기도 하고 정말 향이 좋아 고른 것이기도 하지만... 꽃말인 순결, 시작, 천진난만함, 순진한 마음이 나쁘지 않아서 선택했던 것이고 이 리시안셔스의 경우엔..."
".....변치 않는 사랑..."
"맞았소. 내가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자 항상 가지고 있는 마음, 주고 싶은 것이지."

리시안셔스의 꽃말을 멍하니 중얼거린 맥고나걸이 웃음끼 섞인 목소리로 말하는 앨핀스톤을 돌아봤다.
결혼 전과 조금도 차이없는, 아니 전보다 더 진해진 다정하고 진지한 그의 눈동자가 부드럽게 휘어진 채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진심을 전하고 있었다.
숨김없는 그의 애정에 맥고나걸은 볼을 붉히며 작게 헛기침을 했다.
왠지 똑바로 마주보기가 불편해 시선을 돌리자 그는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꽃에 다 담았소. 대답을 해줬으면 하는데?"
".....대답... 꼭 해야해요?"
"음... 말로 못하겠다면 나처럼 꽃으로 해도 좋고..."

능청스런 그의 말에 약간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해서 살짝 흘겨보자 그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미 그녀의 모든 반응을 예상했다는 그의 태도에 맥고나걸은 토라지려다가도 그가 전한 진심에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를 정도로 좋아서 마음껏 표현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자연스럽게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멈추는 것으로 토라지는 것을 대신했다.
그녀가 입꼬리도 안 올리고 무표정하게 있자 앨핀스톤은 화가 난 것이냐면서 물었고 그녀는 흥 하는 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렸다.
대답을 안 해주겠다는 말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었으나 그는 굴하지 않고 옆에서 계속 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그 사소한 싸움의 승자는 앨핀스톤이었다.

옆에서 눈을 빛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자니 대답해줄 때까지 졸졸 따라다닐 것만 같아 맥고나걸은 할 수 없이 대답을 해주기로 했다.
더구나 오늘은 결혼 기념일이었으니까 조금 더 아량을 베풀어도 나쁘지 않다고 애써 합리화했다.
그런데 왠지 말로 하든, 꽃으로 전하든 낯부끄러울 것은 똑같을 것 같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맥고나걸은 작게 한숨을 내쉬더니 짧게 입을 맞추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짧은 키스 후에 찾아온 어색한 적막에 맥고나걸은 얼른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며 빨개진 얼굴을 감추려고 했고 앨핀스톤은 그런 그녀의 뒤를 따라가며 더 정확한 대답을 해달라고 했다.
거의 반 조르는 식의 그의 말을 들으며 거실 창가에 놓인 꽃병에 꽃다발의 꽃들을 꽂으며 내가 어째서 그런 짓을 한걸까 진지하게 고민하던 맥고나걸은 그가 아직도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휙하고 그를 돌아봤고 싱글벙글 웃고 있는 앨핀스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그 얼굴을 보면서 이건 뭔가 억울하다고 얼굴이 아직도 붉은 맥고나걸은 생각했다.

"난 당신 대답을 정확히 듣고 싶은데 말이오?"
"......나중에... 나중에 해준다니까요..."
"부끄러운 것이오?"
"앨핀...!!!"

자꾸만 놀리듯 말하는 그의 말에 버럭하자 앨핀스톤은 그녀를 꼬옥 끌어안으며 웃었다.
얼굴만 빨개지지 않았다 뿐이지 좋아서 어쩔 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그 행동을 통해 안 맥고나걸은 가만히 안겨있었다.

두근거리는 심장의 박동이 맞물려 기분 좋게 들렸던 그 순간이 끝나고 나서도 앨핀스톤은 대답을 듣고 싶다고 졸랐지만 들을 수 없었다.
맥고나걸이 그에 대한 대답을 한 것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녀의 대답을 듣고 싶어했던 사람이 곁에서 사라지고도 오랜 시간이 흘러 그녀답게 살아가려고 한 발 내딛던 날, 비로소 그녀는 그에게 대답을 했다.
그가 그녀에게 항상 주었던 리시안셔스와 함께 붉은 다알리아를 건네는 것으로...

다알리아의 꽃말은 감사, 당신의 마음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
그리고.... 당신의 사랑이 나를 행복하게 합니다.

Posted by 설하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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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자습실 한쪽이 시끄러워지는 것 같아 보고 있던 변신술 책을 내려놓고 자습실 안을 둘러보던 맥고나걸의 눈에 매해 화제의 중심인 삼인방과 네빌이 들어왔다.
보아하니 론이 과제를 못하겠다고 그러니까 헤르미온느가 나선 것 같은데 네빌까지 있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며 맥고나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습실 안에서 정숙을 깨는 행위는 주의를 주어야 마땅했다.
더구나 여긴 기숙사 거실도 아니고 그리핀도르 학생 전체가 쓰는 자습실이었다.
그들 넷 때문에 다른 학생들마저 집중을 못하고 있었다.

'론은 조금만 더 공부를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조용조용 넷을 향해 다가가자 다른 학생들이 슥슥 피했다.
드디어 론의 옆에 도착해 멈춰서서 잠시 숨을 고른 맥고나걸이 입을 여는 순간 헤르미온느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거기 네 사람-"
"론!! 내 책에 짜증내지마! 그렇게 자유 주제가 짜증나면 내가 정해줄게! 베네무스 텐타큘라! 이거면 되지?"

헤르미온느의 행동에 잠시 인상을 썼던 맥고나걸은 헤르미온느의 한 마디 때문에 멈칫하고 말았다.
헤르미온느가 펼쳐서 보여주는 책장에 그려진 수많은 식물들 중 나무를 닮은 듯하지만 줄기에 이빨이 달린 것에 맥고나걸은 시선이 고정되어 버렸다.
주변에서 네 사람의 만행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보고 있는 학생들이 있었건만 그녀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마주한 지금, 그녀는 평소의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베네무스.....텐타큘라....'

그저 그 이름 하나 들었을 뿐인데 순간적으로 그녀는 1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그녀가 살면서 겪었던 수많은 괴로운 일 중에서 가장 괴롭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났던 순간으로 돌아가버린 맥고나걸의 머리속은 백지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앨핀......!'

맥고나걸은 그녀가 지금까지 살면서 수도 없이 다짐하고 늘 해오던 마음의 동요를 드러내지 않고 침착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습관 덕에 동요를 드러내지 않았다.
맥고나걸 역시 인간이었기에 평소 학교 생활을 하며 학생들을 지도하다보면 그녀가 항상 유지하고자 하는 공평하고 엄격한 기준을 지키기 힘들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지켜냈다.
항상 침착 냉정하며 객관적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사실은 학교를 다니기 전부터 자신이 마녀란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던 것과 자신의 개인적인 것을 들키길 원치 않았던 것 때문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습관화 되어 있고 노력하던 것이라 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그녀에게 트라우마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의 것을 본 순간의 동요를 완벽히 컨트롤 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패닉에 빠져버린 것이었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의 표정이나 행동만은 어느정도 통제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평정심을 잃고 패닉에 빠졌음에도 눈동자와 입술의 작은 떨림만이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면 대단한 자기 통제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술렁임과 주의를 주려고 찾아왔던 네 사람마저 의아함을 가지고 있단 사실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굳어있는 맥고나걸의 모습에 다들 평소와 다른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맥고나걸이 동요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없었고 평소와 달리 바로 처벌을 안 하시는 것이 화가 많이 나셨나 하는 학생들과 상대가 상대니만큼 훈계 방법을 새로 바꾸셨나 싶은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은 론과 네빌이 눈치채기 전엔 그 둘이 언제쯤 눈치챌 것인가에 대해 궁금해했을 뿐이었고 지금은 어떤 새로운 방법으로 맥고나걸이 네 사람을 혼내려는 것인지를 기대하고 있었다.
맥고나걸의 정면에 있던 네 사람 중 해리와 헤르미온느를 제외하면 맥고나걸이 뭔가 이상하단 것을 눈치챈 사람은, 아니 이상하다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 맥고나걸은 그녀의 노력이 목표했던 바대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공평 공정 엄격의 마스코트였기에 모두의 생각은 당연한 것이었다.

"교수님....?"
"...아...."

그래서 해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을 때 그녀의 반응에 다들 갸웃했다.
조금 놀란듯 시선을 돌리는 그녀를 보며 교수님이 잠시 다른 생각을 하셨던 거구나 하고 놀라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나 맥고나걸은 해리의 부름으로 그녀의 몸의 움직임과 감각까지 앗아가 화이트 아웃 상태로 만들었던 패닉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책에서 어렵사리 시선을 떼고 주변을 보자 조금씩 일그러져 보이는 학생들의 모습에 얼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심장이 불안감으로 미친듯이 두근거렸다.
조금 전까지 무슨 상황이었는지도 잊어버릴 만큼 강렬한 충격에 잠시 맥고나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심장이 떨리고 뛰어대는 만큼 그녀의 손도 가늘게 떨려왔다.
다행히 심장은 내색하지 않으면 아무도 못 알아챌 것이고 손은 소매로 감출 수 있었다.
혹여라도 얼굴이 수습이 안 되었을까봐 얼굴을 돌렸던 맥고나걸은 그녀가 네 사람에게 주의를 주러 왔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작게 쉼호흡을 해 억지로 평정심을 되찾아왔다.
하지만 감점 외에 더 추가하려 했던 말들은 머리속에서 지워진지 오래였고 다시 떠올릴 여유도 없을 만큼 맥고나걸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다니... 그리핀도르 5점씩 감점이다. 넷 다."
"네..."
"다시 한 번 시끄러워지면 그 땐 벌과 함께 내보낼거야. 조용히 공부하도록."
"알겠습니다."

평소처럼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맥고나걸은 겉으로 보기엔 평소랑 조금의 차이도 없었지만 속으론 그녀답지 않게 당황하고 있었다.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상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쥐어짜내듯 그 말을 하고는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갔다.

맥고나걸의 가벼운 처벌에 학생들은 모두 김이 샌듯 구시렁 거렸고 그런 학생들을 지나가며 지도하는 맥고나걸은 멍한 상태였다.
몸은 습관적으로 학생 지도를 하고 있었지만 뇌에선 그녀가 무슨 행동을 하고 있고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리에 와서 앉아 안경을 쓴 다음 아까 전까지 보던 변신술 책을 펼쳤지만 머리속이 엉망이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진정하자 진정해... 아주 오래전 일이야. 이젠... 괜찮아...'

스스로를 다독이며 책장을 넘기고 양피지 위로 깃펜을 굴렸다.
하다보니 정신도 돌아오고 손떨림도 멈춰서 아까와 같은 평온한 상태로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까처럼 개운한 기분이 아니라 우울하고 슬픈 기분이었다.
그런 상태에서도 일에는 조금의 흐트러짐이 없는 것이 대단했다.

"저녁시간이로군. 모두 가서 저녁 먹도록 하세요."
"네 교수님."
"저녁 맛있게 드세요 교수님."
"그래. 좋은 저녁 보내렴."

저녁 식사시간이 된 것을 알리고 책과 양피지를 챙기고 있는데 학생들이 인사를 하며 나갔다.
학생들의 인사에 대꾸하던 맥고나걸은 대부분의 학생이 나가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미뤄뒀던 우울함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습실 정리를 하고 나가려는데 아직 자습실을 나서지 않은 네 사람이 보였다.

'....? 할 말이 있는건가?'

책과 양피지를 들고 네 사람에게 다가가자 넷이 그녀를 돌아봤다.

"포터, 위즐리, 롱바텀, 그레인저. 여기 서서 뭐하니?"
"예?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수님."
"그래?"
"네."

해리의 말에 갸웃하면서도 왠지 자신을 관찰하는 것만 같은 눈빛에 괜히 얼굴을 한 번 쓸어보고 자습실을 나서려고 걸음을 옮겼다.

"그럼... 말썽 부리지 말고."
"네..."
"이러다 저녁 시간을 놓치겠구나. 얼른 가서 저녁 맛있게 먹고... 포터와 위즐리는 오늘 저녁 연습 잘 하렴."
"네. 교수님도 좋은 저녁 되세요."
"그래."

해리와 헤르미온느의 시선에 뭔가 불편함을 느낀 맥고나걸은 서둘러 네 사람을 뒤로 하고 지팡이를 휘둘러 불을 끄고 커튼을 쳤다.
자습실을 나서서 평소와 같은 걸음걸이로 힘차게, 하지만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붙잡지 못하게 도망치듯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모퉁이를 돌아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걸어가던 맥고나걸은 뒤에서 따라오는 기척도, 부르는 소리도 없자 발걸음을 늦췄다.

조용한 복도를 걸어가며 맥고나걸은 아까까진 일을 하느라 미뤄두고 있었던 기억들을 천천히 곱씹었다.
이젠 괜찮다고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하나하나 떠오를 때마다 가슴을 쿡쿡 쑤셔오는 정체모를 것에 맥고나걸은 괴로워했다.

'...미네르바... 정말... 일을 그만둘건가..?'
'미안해요 앨핀스톤. 하지만 이곳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미네르바... 당신처럼 능력있는 사람이... 이런 승진은 유례가 없던 일이야.'
'알아요. 하지만 내겐 승진이나 출세보다 더 중요시하는 게 있어요. 난 내가 하며 행복한 일을 하고 싶어요. 이곳에서 아마 난 남들이 선망하는 데까지 남들보다 빨리 갈 수 있겠죠. 하지만 행복하지 않을거에요. 살아도 살은 게 아니겠죠. 그래서에요.'

마법부를 떠나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순수혈통 우월 주의자들로 가득찼던 그곳에서 맥고나걸은 버티기 힘들었다.
더구나 첫사랑이었던 두걸의 청혼을 거절하고 도망쳐서 힘들어하던 그 당시의 맥고나걸은 정말로 그곳에서 그녀를 잃어버리고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가치관과 기준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 틈에서 그녀를 챙겨주었던 착하고 다정한 상사가 없었다면 아마도 그녀는 훨씬 더 빨리 자신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일을 그만둬야 하는 것인가를 고민했지만 두걸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을 잊기 위해서라도 스스로를 일에 밀어넣었었고 그녀를 표현하는 전형적인 말이 되어버린 책임감과 성실함 때문에 그 고민의 답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덤블도어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녀가 먼저 보낸 일상적인 안부편지에 학교는 어떻냐는 물음을 덧붙여 보냈는데 덤블도어는 답장에 호그와트 변신술 교수 자리와 기숙사 사감직을 맡아주면 어떻겠냐는 답을 달아 보내주었다.
그의 편지에 맥고나걸은 지금까지 고민하면서도 내려둘 수 없었던 일을 미련없이 그만두고 나왔다.
그녀에게 유례없는 고속 승진이란 결과가 내려왔음에도 그녀의 발걸음엔 망설임이 없었다.
맥고나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그녀가 혼혈이란 것 때문에 깔보고 무시했던 사람들은 그녀가 퇴사한다는 것에 코웃음을 쳤지만 단 한 사람, 앨핀스톤만은 진심으로 아쉬워했었다.
그의 아쉬움과 걱정이 스민 눈빛에 맥고나걸은 그녀가 그곳에서 일하면서 보여준 적 없었던 개운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자신의 상사에게 말했었다.

"......그렇게 다시 만날거라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그 당시 앨핀스톤은 그녀에게 좋은 상사였지만 그렇다고 자주 왕래할 생각이 드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맥고나걸은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다른 교수들처럼 학교 밖에 따로 집을 마련하고 지냈던 것이 아니라 호그와트 내의 교수방에서 계속 지냈기 때문에 더더욱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맥고나걸이 변신술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 앨핀스톤은 그녀를 만나러 왔었다.
자신을 찾는 손님이 있다는 말에 나갔다가 손님이 그란 것을 알았을 때 맥고나걸은 당황한 얼굴을 숨기지 못했었고 앨핀스톤은 사람좋게 웃으면서 내가 온 것이 그렇게 뜻밖의 일이냐고, 싫은 것이냐고 장난스럽게 말했었다.
그의 말에 더 당황해 그녀답지 않게 말이 꼬여버리긴 했었지만 놀람이 가라앉자 태연하게 받아칠 수 있게 되었었다.

'미네르바 그동안 별 일 없었소?'
'....날이 좋은데.... 시간 좀 내줄 수 있소?'
'마음에 들진 모르겠지만 선물이오.'

앨핀스톤은 그 후로도 그녀를 자주 찾아왔고 올 때마다 작은 선물을 가져왔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마음을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고 그의 호의를 마냥 감사하게만은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앨핀스톤은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그녀가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자 그녀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행동했다.
서서히 맥고나걸 역시 앨핀스톤과 점점 가까워졌고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주고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한 사이가 되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앨핀스톤은 그녀에게 청혼했다.

'미네르바... 내가 당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것 때문에 망설였지만....'
'앨핀스톤..?'
'......좋아하오.'
'.......'
'최선을 다해 당신이 행복할 수 있게 해주겠소. 그러니 부디 나와 결혼해주겠소..?'

어떤 미사여구도 없이, 하지만 더없이 진실된 말로 그는 정면으로 부딪쳐왔다.
잔뜩 떨리는 그의 음성과 눈동자를 보며 맥고나걸은 잠시 할 말을 잃었었다.
평소와 달리 긴장한 그 때문인지 갑자기 얼어붙었던 둘 사이의 분위기에 주변마저 고요했었다.

"...그 때가 가장 긴장된 순간이었노라고 했었지... 당신은...."

그 때를 떠올리며 어느새 앞마당이 보이는 복도까지 걸어와버린 맥고나걸은 겨울이 되어 시들어버린 풀잎 위로 내려앉기 시작한 어둠을 가만히 바라봤다.

'......미안해요. 앨핀스톤. 하지만 나는 아직... 아직은...'
'괜찮소. 알겠으니 더 설명하지 마시오.'
'....정말 미안해요.'
'괜찮다니까. 그래도 이 일로 날 멀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미네르바.'
'네?'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말이오.'
'....그럼요...'

그의 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가 좋은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직 첫사랑을 잊지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때문인지 거절해버린 맥고나걸은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담아 그를 봤었다.
괜찮다고 말하며 애써 웃어보였지만 그녀의 대답에 그는 처음에 굉장히 실망한, 어쩌면 상처받은 것도 같은 얼굴을 했었다.
미안해 하는 자신을 위해 억지로 웃어보이려는 그의 얼굴은 평소의 얼굴이 아니었다.
잘게 떨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느꼈었다.
그를 더 볼 수 없어 고개를 푹 숙인 그녀를 보고 앨핀스톤은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더니 평소의 장난끼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 거절했다고 너무 그러지 마시오.'
'...?'
'난 계속, 당신이 날 좋아하게 되도록 노력할테니까.'
'앨핀스톤...'
'하지만 당신이 날 받아주기 전까지 좋은 친구의 자세를 유지할 것이오. 그러니 걱정마시오.'

그의 밝은 목소리에 얼굴을 드니 평소 같은 밝은 얼굴로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하는 앨핀스톤이 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익살스런 농담에 함께 웃었었다.

"그래... 생각해보면 당신은 내게 늘 부담이 되지 않으려고 했었죠. 내게 항상 웃음을 주는 사람이었어요. 다정하고 편안한, 의식하지 못했지만 어느새 자연스럽게 자신의 존재를 새긴 사람이었죠."

앞마당으로 나가는 문에 기대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맥고나걸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밤하늘 위에 수많은 별들을 올려다 보던 그녀의 눈에 은하수를 가로지르며 사라지는 별똥별이 보였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선명히 떠오르는 그의 얼굴과 미소에 잊었노라고, 이젠 슬픈 일은 잊고 좋은 일만 떠올릴 수 있다고, 더이상 아프거나 괴롭지 않다고 했던 자신의 말이, 생각이 오만이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청혼을 거절당한 이후에도 앨핀스톤은 그녀를 자주 찾아왔었다.
마법부 일로 바빴을텐데도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그녀를 만나러 왔었고 맥고나걸 역시 어느 순간부터 그를 기다리는 자신을 눈치챘었다.
그런 자신을 눈치챈 다음엔 씁쓸하게 웃었으면서도 그녀는 그와의 아슬아슬한 관계를 더 발전시키려 하지 않았다.
앨핀스톤 역시 굳이 그 선을 넘으려고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랬기에 그들의 관계가 유지되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앨핀스톤이 맥고나걸을 찾아오는 것을, 그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을 안 제임스와 그의 친구들은 짓궂게도 그것을 놀렸고 맥고나걸이 그들을 혼냈지만 멈추지 않았다.
앨핀스톤은 그들의 놀림에 멋쩍은 웃음과 쑥쓰러워 하는 얼굴을 하다가도 너무나 진지하고 당당한 얼굴로 그녀에 대한 마음을 말해서 그 자리에 같이 있었거나, 전해 들었던 그녀의 얼굴을 붉게 물들게 했었다.

"맥고나걸 교수님 여기서 뭐하세요?"
"아무것도 아니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맥고나걸은 자신의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자신을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여학생에게 대충 둘러대고 맥고나걸은 얼른 그 학생을 뒤로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각자가 갈 곳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복도에 많아지자 맥고나걸은 다시 걸음을 옮겨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그녀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엔 불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단촐했다.
어찌보면 삭막하기도 하고 무미건조하게도 보이는 방에 들어선 맥고나걸은 책과 양피지를 책상에 내려두고 모자를 벗었다.
이미 저녁 식사 시간은 끝나서 대연회장으로 내려갈 생각이 없었기에 그녀는 옷을 갈아입었다.
갈아입은 옷을 방 한켠에 있는 옷걸이에 걸어두고 돌아서던 맥고나걸의 눈에 책상 위에 올려진 몇 안 되는 액자들이 들어왔다.
가만히 액자들을 보다가 흑백으로 된 많은 사람들이 찍힌 사진을 들어올린 그녀는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찾고는 가만히 들여다 봤다.

'.....꼭..... 기사단에 가입해야겠소 미네르바?'

덤블도어에게 그 역시 제안을 받았던 터라 그녀의 가입 사실을 알게 된 앨핀스톤은 그녀를 찾아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이미 죽음을 먹는 자들과 싸울 각오를 세웠던 맥고나걸은 그의 걱정에 담담한 태도로 말했다.

'네. 그들은 옳지 못한 일을 저지르려 하고 있어요. 난 그걸 막고 싶어요. 그들에게 희생되는 것은 죄없는 머글 태생과 나 같은 혼혈일테니까요.'
'미네르바 난....'

담담한 그녀를 보며 뭐라 말을 잇지 못하던 앨핀스톤은 체념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더니 굳건한 눈으로 그녀에게 말했었다.

'난 비록 겁쟁이라 가입하진 못했지만 마법부에서 근무하고 있소. 거기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면 힘 닿는대로 도와주겠소.'
'앨핀스톤...! 그렇지만 그러면....'
'내 걱정은 마시오. 대신 몸조심 해야하오, 미네르바.'

그렇게 웃어보인 앨핀스톤은 그 뒤로 맥고나걸을 통해 마법부 내에서 귀중한 정보를 기사단에 전달했다.
그러다 제임스와 릴리가 볼드모트의 손에 죽고 해리를 죽이려던 그가 사라진 뒤 죽음을 먹는 자들이 대거 아즈카반으로 잡혀가고 평온한 시대가 시작되었다.
볼드모트가 죽은 직후는 혼란스러웠지만 대략 1년이란 시간이 흐르자 조용해졌다.
마법 세계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어느덧 50을 넘긴 맥고나걸은 여전히 호그와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앨핀스톤 역시 그녀를 자주 찾아왔었는데 평화롭던 어느날 그는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서 청혼했다.
호숫가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조심스럽게 꺼낸 그의 청혼을 맥고나걸은 받아들였다.
이미 몇 해 전에 고향에 계신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의 첫사랑인 두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줬고 맥고나걸은 그에 충격을 받고 잠시 흔들렸었지만 드디어 정리를 끝낼 수 있었다.

늦은 나이에 한 결혼이라 조촐하게, 하지만 친한 지인들을 불러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호그스미드의 한 오두막집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맥고나걸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던 앨핀스톤은 이미 마법부에서 은퇴했었기에 맥고나걸이 출퇴근 하기 편한 호그스미드에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그녀가 청혼을 받아줬을 때, 결혼식을 올릴 때 그의 얼굴을 맥고나걸은 아직도 잊지 못했다.
그리고 그 뒤에 그와 함께한 시간들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한 번 묻어두고 있던 것을 떠올리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오는 과거의 기억에 맥고나걸은 의자에 앉아 마음을 다스리려고 했다.
이렇게 감정에 휩쓸리면 자신을 통제할 수 없기에 항상 자신을 꽁꽁 싸매며 단속하는 맥고나걸은 학생들에게 엄격하고 공평한 것 이상으로 자신에게 더더욱 철저했다.
하지만 아무리 스스로를 다그쳐도 뜻대로 통제가 안 되는 경우가 있었다.
바로 지금같은 경우가 그랬다.

이젠 더는 곁에 없는 사람들이나 가지고 있었지만 잃어버린 것 때문에, 알아버린 따스함과 행복이란 것이 사라져 버린 지금 항상 마주하고 있는 공허함과 허무함에 무너지지 않으려고, 괴로워하지 않으려고, 이러한 자신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무딘 애를 쓰지만 힘겨울 때가 있었다.
남들이 강인하다 말하는 그녀였지만 사실은 강해보이는 그 이면에는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약한 본질적인 모습이 존재하고 있었고,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힘들다고, 아프다고 몇 번은 말하고 토해내며 괴로워했을 것을 오롯이 혼자 속으로 눌러 삼키며 인내하고 있었다.
몇 배로 힘겨워 하면서도 그녀는 남들에게 보이는 자신을 한결같이 유지하고 있었다.

가슴 한 구석이 비어버린 아릿한 고통을 삼켜내며 맥고나걸은 애써 스스로를 다스리려고 했다.
자꾸 터져나오는 기억들과 감정들을 누르려고 애를 쓰며 맥고나걸은 스스로를 세게 끌어안았다.
벽난로에 불을 때지 않아 싸늘한 방 안에서 자신을 세게 끌어안으며 바깥에서의 한기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오는 한기를 이겨내려고 했다.
누구도 없는 자신의 방에서마저도 그녀는 마음껏 자신을 풀어두지 않았다.



"...!"

그러던 중 그녀가 앉은 의자 앞에 있던 책상 위로 편지가 떨어졌다.
얼른 자신을 안고 있던 팔을 풀고 그녀는 편지를 집어 들고 뜯었다.
발신인은 덤블도어였다.

'미네르바. 오늘 저녁 교수 모임이 있으니 9시까지 교장실로 오시오. -알버스'

길고 유려한 필체로 휘갈겨 쓴 편지를 본 맥고나걸은 자신을 집어삼킬 듯 일렁이던 기억과 감정들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사라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조용해진 그것들을 다시 덮어두며 맥고나걸은 시계를 바라봤다.
오후 8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본 맥고나걸은 다시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눌러두고 잊고 있었던 기억과 감정들은 그녀가 다시 떠올린 지금을 기회라 생각하는지 계속 그녀의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얌전히 있었다.
그랬기에 맥고나걸은 교장실에 도착해 평소처럼 행동할 수 있었다.

"일찍 왔구려 미네르바."
"보자마자 왔으니까요. 알버스."

그녀가 교장실에 들어서자 반갑게 울며 그녀의 어깨에 앉은 퍽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맥고나걸이 덤블도어를 바라봤다.
언제나 깊고 평온한, 사람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은 그의 푸른 눈동자와 마주하자 흔들리는 자신의 내면을 들킨 것만 같아 맥고나걸은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
덤블도어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지팡이를 휘둘러 간단한 간식거리를 불러냈다.
맥고나걸에게 자리를 권하며 간식을 그녀의 앞에 내려둔 그는 그녀의 옆, 그녀를 마주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다른 교수들이 늦는군요."
"그들에겐 10시라고 알렸으니까."

자리에 앉으며 맥고나걸이 다른 교수들이 오지 않는 것에 의문을 표하자 덤블도어는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맥고나걸은 큰 눈을 좀 더 크게 떴다가 미간과 콧등을 찌푸리며 말했다.

"알버스. 대체 왜 그런..."
"일단 샌드위치라도 들지 않겠소 미네르바? 오늘 하루 당신에게 꽤나 고되었던 것 같은데... 저녁 식사 자리에도 안 나타나지 않았소."

맥고나걸의 말을 자르며 덤블도어는 그녀에게 먹을 것을 권했다.
자신이 그것을 먹지 않으면 유들유들하게 대답을 회피할 것을 알기에 맥고나걸은 마음에 들진 않더라도 일단 샌드위치를 들어서 한입 베어물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진 샌드위치였던 데다가 맛까지 있었기에 찌푸려졌던 얼굴은 금세 펴졌다.
샌드위치를 먹다 자신을 지그시 보며 엷게 웃고 있는 덤블도어를 본 맥고나걸은 문득 지금 이것이 그가 자신을 챙겨준 것이란 것을 깨달았다.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알버스."
"이정도로 뭘 그러시오. 그보다도... 오늘 많이 힘들었소 미네르바?"

그녀가 표한 감사에 덤블도어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반달 안경 너머로 조심스럽게 그녀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맥고나걸은 평소처럼 시크하게, 하지만 어딘가 씁쓸하고 지친 듯한 얼굴로 웃어보였다.

"네. 조금... 많이 힘드네요."
"그렇소?"
"....네.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더 그런 것 같아요."

덤블도어 앞에서는 그나마 솔직하게 자신을 털어놓는 맥고나걸이 그녀답지 않게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자세히 설명하진 않았지만 그녀의 지치고 무너진 모습과 목소리에 덤블도어는 더 깊이 물어보지 않고 조용히 따뜻한 잔에 담긴 브랜디를 건넸다.
맥고나걸은 감사를 표하며 그것을 마셨고 덤블도어는 퍽스를 쓰다듬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맥고나걸은 그 조용한 분위기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편안하게 느꼈고 그가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지만 위로의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한 위로를 받았다.
그것은 학창시절 가장 가까웠던 스승이자 근 40여년을 함께한 동료라는 이름의 깊은 유대감에서 오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때문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미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묘하게도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다독여주는 것만 같은, 그런 부드럽지만 어딘가 아픔을 품은 것만 같은 공기가...
실제로 두 사람은 서로 닿지 않았지만 손을 뻗는다면 충분히 닿는 거리에서 약간의 공간을 두고 떨어져 있었음에도 그 미묘한 기류 탓인지 가까이서 서로를 다독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떠한 말도 오가지 않는 상태로 얼마나 있었을까...
아릿한 부드러움이 섞인 기류로 가득찼던 교장실 안에 정적을 깨는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한 손에 브랜디가 든 잔을, 다른 한 손엔 빵 부스러기를 쥐고 있던 맥고나걸이 돌아봤다.
덤블도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들어오라고 말했고 퍽스는 맥고나걸의 손에 있는 빵 부스러기를 쪼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스네이프가 들어왔고 그 뒤를 이어 플리트윅과 스프라우트가 차례로 들어왔다.
그들이 오자 덤블도어는 그들을 부른 이유를 설명해주며 이야기를 시작했고 맥고나걸을 비롯한 각 기숙사 사감들도 이야기를 시작했다.
공적인 이야기가 끝나고 사적인 이야기로 접어들어서 각자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기 시작한 교수들은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 맞아. 올해는 텐타큘라의 성장이 좋아서 질 좋은 마법약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그것 참 다행이군요."

스프라우트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밝은 목소리로 말했고 스네이프는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특유의 어조로 대꾸했다.
하지만 그가 흥미로워 하고 있다는 것은 살짝 들린 입꼬리에서 알 수 있었다.
덤블도어는 그런 두 사람을 미소 띈 얼굴로 보다가 맥고나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플리트윅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던 맥고나걸의 얼굴과 어깨가 미묘하게 굳어있었다.
그걸 본 덤블도어의 푸른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러나 굳었던 것은 찰나였고 플리트윅의 말에 약간은 과장스런 반응을 보여주며 대답한 맥고나걸은 스프라우트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텐타큘라는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 위험성만큼이나 효용성이 커서 기를만한 것 같아요. 물론 키우기가 까다로워서 문제긴 하지만요. 안 그래요 포모나?"
"오 그렇죠. 정말이지 텐타큘라만큼 활용도가 높은 식물도 없을거에요."
"그래도 난 그게 싫어요."

맥고나걸이 약간 인상을 쓰며 말하자 스프라우트는 갸웃하다가 아차 하는 얼굴을 했다.
살짝 취기가 돌아 내심을 말해버린 맥고나걸의 모습에 스프라우트는 놀라면서도 그녀가 안쓰러웠다.
아무리 취기라고 하더라도 평소라면 드러내지 않았을 속마음을 들어버린 스프라우트는 어두워진 맥고나걸의 얼굴을 보며 어쩔 줄 몰랐다.

"자, 밤이 깊었으니 이제 돌아가서 쉬는 것이 좋을 듯한데..."
"네. 그게 좋겠네요."
"교장선생님도 쉬세요."

그런 스프라우트를 도와주려는 것인지 덤블도어가 나서서 모임을 끝내는 말을 했고 스프라우트는 얼른 그것을 받았다.
다른 두 교수도 동의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이 마신 것을 치운 세 교수는 인사를 하고 나갔다.
맥고나걸도 일어나 나가려는데 덤블도어의 한 마디가 그녀를 붙잡았다.

"가끔은 힘들지만 스스로를 풀어두는 것도 필요하네. 미네르바. 두렵겠지만 자신을 마주봐야 할 때도 있어. 그것이 오래되고 아프면 아플수록 더더욱 말이네."
"......충고 고맙네요 알버스. 그럼 내일 뵙도록 하죠."
"그러지. 조심해서 들어가시오 미네르바."
"조심이랄 것 있나요. 성 안인데."
"오...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소."
"네. 좋은 밤 보내시길."
"아 미네르바. 다음 호그스미드 방문일에는 한잔하는 것이 어떻소?"
"....그러죠 알버스."

덤블도어의 말에 돌아보지 않고 쓴웃음만 짓던 맥고나걸은 인사를 하고 교장실을 나섰다.
허공을 걷듯 약간 휘청이며 걸어서 자신의 방에 도착한 맥고나걸은 책상 서랍을 열고 작은 케이스를 하나 꺼내들었다.
케이스를 열자 보이는 것은 심플한 디자인의 반지였다.
그것을 내려다보며 맥고나걸은 인정했다.

오늘 학생들의 책을 보고 갑자기 떠올린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인식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 것 뿐이었다.
조금 전 스프라우트의 말처럼 그녀가 그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요인들은 평소에도 많았고 그것에 동요하지 않게 무감각해지려고 했었다.
평소에 가능하면 지나간 것을 떠올리려 하지 않고 학교 생활에 집중하려고 하는 자신을 인정했다.
오늘 이렇게 흔들려버린 것은 호그스미드 방문이 다음주라는 사실과 우연히 서랍을 열었다 발견 해버린 반지 케이스 때문이란 것을 인정했다.

"........어쩌면 난 도망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앨핀. 난 당신이 말한대로 용감하지 않은지도요..."

반지를 쓸어보며 맥고나걸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언젠가 마주해야 하는데... 아직은 그럴 용기가 나지 않네요.'

그날 밤 맥고나걸의 창문에 불이 꺼진 것은 동이 터올 무렵이었다.

그 다음날 맥고나걸은 평소처럼 생활했고 삼총사는 전혀 이상한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호그스미드 방문일이 될 때까지 맥고나걸은 마치 그날의 흔들림이 거짓이었다는 것처럼 생활했다.

호그스미드 방문일 아침
맥고나걸은 호그스미드를 방문하려는 학생들을 모아서 확인증을 검사하고 내보냈다.
학생들을 다 보내고 확인증을 갈무리한 맥고나걸은 바깥의 추위에 대비해 옷을 단단히 입고 학교를 나섰다.

그녀의 발걸음은 호그스미드 중심부의 스리 브룸스틱스가 아닌 외곽으로 향하고 있었다.

Posted by 설하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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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 그게 아니야..!"
"그럼 이걸 어떻게 하는데?"
"이걸 보고 하라고."

그리핀도르 자습실 안이 시끌시끌했다.
론이 뭔가에 대해 틀렸는지 헤르미온느가 지적을 하고 있었다.
해리는 옆에서 난감한 얼굴로 조용히 헤르미온느의 설명을 듣는(일명 묻어가기) 것 같았다.
헤르미온느는 두꺼운 책을 쿵 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앞에 내려놨다.
그 책의 살인적인 두께에 론은 나지막히 투덜댔다.

"세계의 독식물들? 우엑.. 그 책을 다 보다간 내 뇌가 터져 버릴거야. 넌 잘도 그런 책을 보는구나 헤르미온느."
"론. 이건 우리 기본 참고서야."
"윽..."
"론 의외로 이거 재밌어."
"네빌... 너라면 재밌겠다."

질린다는 얼굴로 말하는 론을 찌릿하고 노려보는 헤르미온느와 일단 책을 펼쳐보는 해리, 그리고 그 셋에게 다가온 네빌까지 넷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소곤소곤 대화한 것이 아니라 그 근처에 있던 모든 학생들과 저 앞에서 학생들을 관리하는 맥고나걸의 주의를 끌었다.

"론!! 투덜댈거면 하지마!!"
"알았어. 알았다구..."

가르쳐주는데 계속해서 투덜거리는 론에게 짜증이 나버린 헤르미온느가 화를 냈고 그제서야 론이 꼬리를 내렸다.

"그렇지만 자유주제라니... 정말 짜증난다고!!"

너무 시끄러워지는 것 같자 맥고나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을 꾹 다물고 한바탕 퍼부을 것 같은 기세로 조용히 걸어오는 맥고나걸을 본 다른 학생들은 그 네 사람에게서 떨어졌다.
그러나 넷은 그 이상한 기류를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어찌나 언성을 높였는지 맥고나걸의 목소리가 묻힐 정도였다.
맥고나걸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일은 거의 없었고 언제나 일정한 톤에 일정한 크기를 유지한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네 사람이 정도 이상으로 시끄러웠기에 못 들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거기 네 사람-"
"론!! 내 책에 짜증내지마! 그렇게 자유 주제가 짜증나면 내가 정해줄게! 베네무스 텐타큘라! 이거면 되지?"
"그게 대체 뭔데?"
"눈이 있으면 제발 책 좀 볼래?"
"론, 베네무스 텐타큘라는 위험성이 높은 식물인데..."

헤르미온느의 짜증섞인 목소리와 론의 빈정거림을 무마시키려는 건지 끼어든 네빌이 책을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했다.
론이 열중해서 그것을 듣는 동안 해리는 그들의 옆(정확히는 론과 네빌의 뒷편 옆, 해리와 헤르미온느에겐 테이블 너머 앞쪽)에 서 있는 맥고나걸을 발견하고 헤르미온느를 팔꿈치로 꾹 찔렀다.
헤르미온느는 그에 해리를 돌아봤다가 앞에 있는 맥고나걸을 발견하고 아차 했다.
한바탕 쏟아질 잔소리를 각오하며 눈치없는 앞의 두 남자의 주의를 끌려고 하던 헤르미온느는 한참이 지나도 들리지 않는 맥고나걸의 목소리에 조심스럽게 시선을 들었다.
그러다 굳어있는 맥고나걸의 얼굴을 보고 론과 네빌이 이상함을 눈치채고 돌아볼 때까지 기다리시는 건가 싶어 다시 시선을 내렸다.



"아윽...! 헤르미온느 대체 오..... 헙???!"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두 사람들을 위해 그녀는 테이블 아래로 그녀 앞에 있던 론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가 돌아보자 헤르미온느는 얼굴 표정과 입모양으로 옆에 교수님이 있다고 알렸다.
난데없이 정강이를 걷어차인 론은 소리를 높이다가 자신의 바로 옆에 인기척도 없이 서 있는 맥고나걸을 보고 기겁해서 입을 다물었다.
네빌 역시 그녀를 발견하고 하얗게 질린 건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자신들의 만행을 떠올린 그들은 곧 떨어질 맥고나걸의 꾸지람(불호령이 아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소리치며 화낸 적이 거의 없으니까.)을 기다리며 잔뜩 움츠러들어 있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조용해 설마 화가 많이 나신건가 싶어 살금살금 눈치를 살피며 맥고나걸을 올려다봤다.
그들이 올려다본 맥고나걸의 얼굴은 평소보다 미묘하게 굳어있었다.
그녀의 시선이 정확히 그들을 향해 있는 걸 보며 그들은 대체 어떤 벌을 주시려고 저리 고민하시나 싶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눈치챘다.
맥고나걸의 시선이 자신들을 향해 있지 않고 테이블 위에 펼쳐진 책에 고정되어 있는 사실을...
초점이 살짝 흐려진 것처럼도 보이는 초록색 눈동자는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고 약간의 떨림을 담고 있었다.

'....맥고나걸 교수님?'

보기 싫은 것을 본 것처럼 파르르 떨리는 그녀의 입술과 미간에 잡힌 주름을 본 헤르미온느는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얼른 시선을 내렸다.
그러나 해리는 그녀와 달리 같은 걸 발견하고 멍하니 맥고나걸을 보다가 그녀를 불렀다.

"교수님....?"
"...아...."

해리의 부름에 눈을 깜빡이며 잠시 놀란 듯 멍한 표정을 짓던 맥고나걸은 시선을 돌리며 잠시 그 어색한 기류를 피했다.
그에 네 사람은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맥고나걸은 네 사람을 다시 돌아보곤 입을 열었다.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다니... 그리핀도르 5점씩 감점이다. 넷 다."
"네..."
"다시 한 번 시끄러워지면 그 땐 벌과 함께 내보낼거야. 조용히 공부하도록."
"알겠습니다."

평소처럼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엄격하고 딱딱한 목소리로 말하곤 뒤로 돌아 자리로 돌아갔다.
돌아가면서 평소처럼 집중 못하고 장난치고 있는 학생들을 단속하는 그녀의 뒷모습을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자리에 도착해 앉은 맥고나걸은 벗어뒀던 안경을 쓰고 다시 책과 양피지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평소와 조금의 차이도 없는 모습이었지만 두 사람은 계속 흘끔흘끔 그녀를 바라봤다.
그러나 계속 지켜봐도 특별한 것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 론이 네빌의 도움을 받아 숙제를 끝낼 때쯤엔 저녁식사 시간이었기에 넷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짐을 챙겨 하나둘 자습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흐아... 네빌 고마워."
"아니야. ㅎㅎㅎ."
"저녁 먹고 퀴디치 연습 해야지. 어라? 해리, 헤르미온느 왜 그래?"

해리와 헤르미온느가 일어나서 다른 곳을 보고 있자 지금까지 숙제에만 정신 팔려 두 사람이 발견한 것을 전혀 몰랐던 론은 둘의 옆으로 가며 둘이 보는 쪽으로 시선을 두었다.
둘의 시선은 자습실 앞쪽 맥고나걸의 자리에 꽂혀 있었는데 그걸 안 론의 표정이 괴상해졌다.
맥고나걸은 학생들이 나가며 간간히 인사를 하면 끄덕이며 한 마디씩 하고 있었다.
저녁 맛있게 먹으라는 말부터 약간의 충고까지 학생들 개개인에 맞게 한 마디씩 건네며 보고 있던 책을 덮고 양피지들을 챙기고 있었다.
어느덧 학생들이 다 나가고 네 사람만 남았을 때 정리를 끝낸 맥고나걸이 나가기 전 자습실 내부를 슥 둘러보다 서 있는 네 사람을 발견했다.

"포터, 위즐리, 롱바텀, 그레인저. 여기 서서 뭐하니?"
"예?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수님."
"그래?"
"네."

한손에 책과 양피지를 들고 네 사람의 곁으로 온 맥고나걸이 안경 너머로 네 사람을 지그시 바라봤다.
해리가 맥고나걸의 말에 대답하자 맥고나걸은 해리를 잠시 바라봤다.
그 시선에 의아심이 들 무렵 맥고나걸은 시선을 돌리고 입을 열었다.

"그럼... 말썽 부리지 말고."
"네..."
"이러다 저녁 시간을 놓치겠구나. 얼른 가서 저녁 맛있게 먹고... 포터와 위즐리는 오늘 저녁 연습 잘 하렴."
"네. 교수님도 좋은 저녁 되세요."
"그래."

네 사람을 뒤로 하고 먼저 자습실을 나선 맥고나걸은 지팡이를 휘둘러 커튼을 치고 불을 껐다.
그리고 그녀의 짙은 초록빛 망토를 휘날리며 복도 저편으로 걸어갔다.

"대체 왜 교수님을 본거야 해리?"
"....아니 좀 신경 쓰이는게 있어서..."
"신경 쓰이는거?"
"응..."

이미 모퉁이 너머로 사라진 초록색 옷자락의 잔상이라도 쫓는지 해리의 시선이 맥고나걸이 사라진 쪽에 못 박혀 있었다.
론과 네빌은 그런 해리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해 얼굴을 찌푸렸다.

"그만하고 저녁 먹으러 가자. 진짜 얼마 안 남았어."
"그래."

시간을 알려주는 헤르미온느의 말에 다들 대연회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연회장에 도착해서 네빌이 시무스랑 딘을 발견하고 그쪽으로 가고 셋만 남게 되자 론이 둘을 붙잡고 물었다.

"뭐야... 갑자기 아까 왜 교수님을 빤히 본거야?"
"넌 아무것도 못 느꼈니?"
"뭘? 평소랑 똑같으시던데?"
"...하아... 너에게 기대한 내가 바보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순진무구한 론의 태도에 헤르미온느는 짜증과 체념이 섞인 얼굴로 말없이 먹기 시작했다.
그런 헤르미온느를 보는 론의 표정은 기가 막힌다였지만 해리 역시 어깨만 으쓱해 보이곤 샌드위치를 먹기 시작했다.

"왜 또 나만 왕따해?"
"그런 거 아냐 론. 나중에 말해줄게. 얼른 먹고 나가자."

론이 억울하단 듯 소리치자 해리가 얼른 진정시켰다.
론은 구시렁구시렁 대며 먹기 시작했고 그를 보는 헤르미온느는 한심하단 얼굴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해리 뭐해? 빨리 와!!"
"응? 아 잠시만...!!!"

저녁을 먹고 퀴디치 연습을 하러 갔는데 해리가 탈의실에서 꾸물대며 나오지 않자 론이 재촉했다.
해리는 작은 종이 쪽지를 접어 품에 넣으며 밖으로 나갔다.
퀴디치 연습이 끝난 뒤 해리는 기숙사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부엉이장으로 갔다.

"헤드위그. 아저씨께 부탁해."

해리는 주변을 살피더니 헤드위그에게 아까의 종이를 묶어줬다.
헤드위그는 작게 울더니 밤하늘로 날아갔다.

그로부터 며칠 뒤 해리는 답장을 받았다.
답장을 풀어보는 해리의 옆에 론과 헤르미온느가 다가왔다.
편지엔 언제나 그랬듯 간결한 문장 몇 개가 안부와 함께 적혀 있었다.

'해리에게
나는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말거라.
이번주 금요일 자정에 기숙사 벽난로에서 보자꾸나.
패드풋.'

"금요일이면 오늘이잖아? 뭐 때문에 아저씨한테 연락한거야 해리?"
"저번에 말해줬잖아. 맥고나걸 교수님 말이야."
"그치만... 그 날 이후로도 난 별 특별한 건 모르겠던걸? 평소랑 똑같아. 엄격 공평의 마스코트."
"그야 똑같으셨으니까. 이따 한 번에 알게 될테니 기다려."

궁금해하는 론에게 톡 쏴준 헤르미온느가 책을 챙겨 일어났다.
며칠 전부터 계속된 은근한 구박에 론이 부루퉁해지자 해리가 얼른 중재에 나섰다.
그에 겨우 기분을 푼 론을 보며 해리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날 밤 자정.
셋은 과제를 하는 척 하며 벽난로 근처 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다.
자정이 지나자 벽난로에서 타고 있던 장작이 들썩이더니 두 사람의 얼굴이 나타났다.

"아저씨, 루핀...!"
"쉿 해리. 그래... 맥고나걸 교수님이 어떻게 이상하셨니?"

시리우스만 나타날 줄 알았던 해리는 놀라 목소리를 조금 크게 냈고 시리우스는 얼른 주의를 주며 본론을 꺼냈다.
그에 해리가 다시 주변을 둘러보곤 소리를 낮춰 며칠 전 있었던 일을 간결하게 설명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난 시리우스와 루핀의 표정도 딱히 뭐가 짚히는게 없는지 애매했다.

"모르시겠나요?"
"으음.... 글쎄다. 난 그다지 맥고나걸 교수님과 친하지 않아서 말이다. 무니라면 또 모르지만. 우등생이었거든 누구랑 달리."
"그만하게. 시리우스."

해리의 말에 시리우스가 은근한 농담을 섞어 옆에 있던 루핀을 바라봤다.
루핀은 멋쩍은 듯한 얼굴로 시리우스를 말리더니 해리에게 시선을 주었다.

"그래서... 너희가 보던 책이 뭐라고?"
"어... 세계의 독식물들이요."
"독식물이라..."
"그 때 네빌이랑 제가 론에게 이 페이지를 설명해주고 있었어요."

루핀이 난감해하자 헤르미온느가 얼른 책을 펴서 보여줬다.
루핀과 시리우스는 그 책의 페이지를 찬찬히 살펴봤다.

"잘 모르겠는데..."
"루핀 아무거나요. 이거랑 관련 없어도 좋아요. 우리가 모르는 맥고나걸 교수님에 대한 거면..."
"리무스. 생각나는 거 있나?"
"글쎄... 아...!"
"루핀... 뭔가 있나요?"
"그래..."

루핀이 뭔가를 떠올리자 헤르미온느가 얼른 책을 치웠다.
루핀은 미간을 좁히며 어렴풋이 떠오르는 걸 말했다.

"맥고나걸 교수님이 예전에 결혼생활을 호그스미드에서 하셨단다."
"호그스미드에서요?"
"결혼하셨어요?!"

루핀의 말에 헤르미온느와 두 남자애들의 반응이 동시에 터졌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의문점에 서로를 바라봤다.
시리우스는 그 모습을 보며 작게 킬킬 거렸다.

"그래. 맥고나걸 교수님도 남편이 있으셨지."
"내가 아즈카반에 가있을 때 하셨나보군. 내가 몰랐던 거 보면..."
"맞아. 자네와 제임스가 학창시절에 그렇게 놀리던 앨핀스톤씨와 하셨네. 제임스와 릴리가 죽고 자네가 아즈카반에 들어간 이후 1년인가 뒤에 하셨지 아마...?"

시리우스와 루핀의 대화에 삼총사는 입을 크게 벌리고 멍한 얼굴을 했다.

"자...잠시만요 루핀. 그럼 맥고나걸 교수님의 성은 그 앨핀스톤인가 그 분의..."
"오 아니다. 아니야 해리."
"예? 아저씨도 알아요?"
"그래... 앨핀스톤씨는 맥고나걸 교수님을 줄기차게 쫓아다녔어. 성이 어콰르트 였던가?? 그랬을거다. 그런데 결국 몇십년을 쫓아다닌 보람이 있으셨나 보군. 늘그막에 말이야."
"너희도 보면 알겠지만 맥고나걸 교수님은 약간 남다른 면이 있으시잖니. 결혼하고도 성을 바꾸길 원하시지 않으셨어.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근데 그걸 앨핀스톤씨는 받아줬어."

시리우스가 해리의 말에 키득거리며 답했다.
루핀이 빙그레 웃으며 부가 설명을 해줬다.
해리와 론은 큰 충격을 받아 멍한 얼굴이었는데 헤르미온느는 뭔가를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우리 아가씨는 뭔가 찝찝한 것이 있는 모양인데?"
"네... 과거형인 것으로 보아 그 남편분이 지금은 안 계신 것 같네요. 더구나 맥고나걸 교수님은 여기서 생활하시니까요."
"맞단다. 굉장히 행복해하셨어. 가끔 찾아뵈었을 때 두 분이서 반갑게 맞이해 주셨지. 하지만 3년만이었던가... 앨핀스톤씨가 사고로 돌아가셨지."
"......."

루핀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 다들 숙연해졌다.
왠지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상상할 수 없었던 이야기와 그 결말에 세 사람은 뭐라 할 말을 잃었다.
루핀은 그런 셋을 보다가 나지막히 입을 열었다.

"너희가 맥고나걸 교수님의 그런 태도에 호기심을 가진 건 알겠다. 하지만 그 분도 사람이란 것을 잊지 말아주렴. 워낙 강인하고 독립적인 분이고 너희에게 공정하고 엄격한 이미지라 안 그럴 것 같지만 사생활과 감정이 있는 분이야. 덤블도어 교수님만큼이나 과거나 개인사를 털어놓지 않으시지만 너희는 그걸 존중해 드려야해."
"......네."
"그러니 흥미로 그 분의 비밀을 캐거나 하지말렴. 그 분이 모르게 할 수 있다면 별로 좋은 일은 아니지만 그나마 낫겠지만 모르실리가 없으니 말이야."
"알겠어요 루핀."

루핀은 혹여나 하는 걱정에 세사람을 보며 주의를 주었다.
약간 어두워진 분위기에 시리우스가 나서서 분위기를 환기했다.

"자자... 다음주에 호그스미드로 외출하지?"
"네."
"날도 춥고 그럴텐데 조심히 잘 다녀와라. 재밌는 시간 보내고."
"알겠어요. 아저씨도 몸 조심하시구요. 루핀도 잘 지내세요."
"그래. 나중에 보자."

빙긋 웃는 얼굴로 짧은 대화를 나눈 뒤 벽난로 속의 두 사람의 얼굴은 사라졌다.
그러나 두 사람이 사라진 뒤에도 삼총사는 탁탁 하는 소리와 함께 튀어오르는 불티를 보고 있었다.
방금 전 대화에서 얻은 충격적인 정보에 서로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라 침묵에 싸여 있던 셋 중에 론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교수님이 잠시 책에 시선을 빼앗긴 것 때문에 며칠을 내가 소외감을 느껴야 했던거야?"
"....세상에 론. 지금 이 이야기를 듣고 가장 먼저 하는 말이 그거라니... 정말이지 너답다 너다워."
"내가 뭘?! 결국 연관이 있는 건 없었잖아."
"응. 그랬지. 하지만 놀라운 정보를 얻었어."

론의 너스레에 헤르미온느가 피식 웃으며 절레절레 하고 못 말린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론은 그런 그녀에게 내가 뭐 어때서 라는 표정으로 말했고 해리는 재가 되어가는 장작을 가만히 보며 입을 열었다.
차분한 해리의 목소리에 두 사람은 억지로 분위기를 띄우려던 것을 그만두고 해리의 옆으로 갔다.
왠지 가라앉은 것 같은 해리의 분위기에 두 사람은 아무 말도 못했다.

"맥고나걸 교수님이 결혼이라니..."
"뭔가 안 어울려."
"그런 말은 실례야 론. 아까 루핀도 말했듯이 교수님도 사람이야. 더구나 여자시고."
"그래... 그런데 결국엔...."

맥고나걸의 결혼생활의 끝을 떠올리던 셋은 또다시 침묵에 빠지고 말았다.
아까까지 침묵이 어색함이었다면 지금의 침묵은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예상하지도 못했던 사실에 세 사람이 맥고나걸에 대한 생각을 조금은 달리하게 되었다.
그런데 해리는 뭔가 묘한 느낌에 인상을 쓰다 입을 열였다.

"뭔가 루핀이 했던 말 중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게 있는 것 같아."
"놓치는 것?"
"응... 뭔가... 뭔가 조금 더 중요한게 있는 것 같아. 아니면 루핀도 오래되고 갑작스럽게 물어봐서 생각이 안 나 말하지 않은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해리의 말에 론과 헤르미온느는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자 한숨을 쉬었다.

"일단 지금은 루핀이 해준 이야기와 저번에 일은 큰 상관이 없는 것 같아."
"그래. 교수님도 사람이니까... 잠시 다른 생각을 하실 수도 있는거지. 안 그래?"
"그런가...?"
"응. 새로운 거 하나 알았으니 그만 생각하자. 루핀 말대로 교수님이 감추시고 싶어하는 개인사를 캐는 것도 안 좋은 것 같아."
"....그래."
"이제 자러가자."
"그러자. 벌써 두 시야."

헤르미온느가 먼저 입을 열자 론이 얼른 맞장구를 쳤다.
해리는 여전히 뭔가 찝찝해하는 얼굴이었지만 헤르미온느가 달래듯 말하고 개인사라는 점을 들어 설득하자 끄덕거리며 둘의 말에 동의했다.
아무리 궁금해도 서로의 프라이버시는 지켜줘야 한다는 것을, 그것도 자기보다 훨씬 윗사람에 스승인 사람에 대한 예의를 잘 알고 있었기에 궁금한 마음을 억누르고 세 사람은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세 사람은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꺼내지 않고 묻어두었다.
하지만 억지로 눌러둔 세 사람의 호기심과 루핀이 해준 이야기는 셋의 마음 한 구석에 남아 있었고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 과제와 바쁜 일정을 소화하면서 지내느라 의식하지 못할 때도 많았지만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알 수 없는 찝찝함은 남아있었다.

그런 찝찝한 심경으로 한주를 보내고 호그스미드를 방문하는 주말이 되었다.


Posted by 설하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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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고나걸 교수가 O.W.L 시험 기간 중 해그리드를 습격한 마법부 녀석들을 막으려다 가슴에 기절마법을 4방이나 맞았습니다. 교장선생님.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기절마법 4방은 큰 위험이에요. 지금 성 뭉고 병원에 입원했는데 여지껏 의식 불명 상태라고...'

안 돼. 미네르바...

나는 교장실에서 퍽스의 도움으로 탈출한 이후 도피 생활을 하면서도 학교와 계속 연락을 주고 받았다.
자주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가끔도 아닌 간격이었지만 패트로누스를 통해 미네르바에게 연락을 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아무리 바빠도 내 연락엔 바로바로 답을 보내오던 미네르바가 답이 없어서 필리우스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연락을 했다.
그리고 돌아온 필리우스의 답에 내 이성이 흐려졌다.

한밤중에 해그리드를 쫓아내려고 모인 네 사람을 홀로 막으러 뛰어나갔던 미네르바는 미처 말도 다 못 끝내고 기습으로 기절마법을 맞아 쓰러졌다고 한다.
그것은 비겁하고도 무자비한 행동이라며 필리우스는 분개했다.
그러나 그 연락을 받은 나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단순히 기절을 시키기 위한 주문이지만 그 주문을 사용한 사용자나 그 순간의 마음가짐에 따라 그 위력이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주문이 바로 기절마법 스투페파이이다.
그런데 그 마법을 4방이나, 그것도 가슴에, 아무런 대비도 못한 상태에서...
그 순간을 목격한 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주문에 맞은 미네르바가 주문의 불빛에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고 붕 떠서 뒤로 날아간 뒤에 일어나질 못했다고 한다.
필리우스의 연락 끄트머리엔 그 나이에 그런 공격을 받아 지금은 위독한 상태라는 말이 덧붙여져 있었다.

아아... 미네르바...

내가 없는 틈을 타서 학교와 교직원들과 학생들을 마음대로 하려고 했던 엄브릿지와 마법부의 소행을 미네르바는 결코 가만히 두고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정의롭고 용감한 성품은 그런 불의를 참지 못했을 것이고 강한 책임감은 학생들과 학교, 동료 교수들을 지켜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계속 각인시켰을 것이다.
더욱이 내가 없는 이상 교감인 그녀가 느낀 책임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기절마법 4방이라니!!!
불사조 기사단원 중 하나인 그녀가, 그것도 학생시절부터 뛰어난 마법실력을 지녔던 그녀가 손도 못 쓰고 당했다는 것은 그녀 자신의 방심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그래도 그녀를 공격한 그들이 더 나쁜 것이다.

'알버스-'

결코 크지 않지만 언제나 차분하고 정갈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주던 그녀를 어쩌면, 어쩌면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손이 떨려왔다.

그녀는 강하니까 쉽게 죽지 않을 거라고 되뇌어보지만...

나는 안다.
오직 나만이 알고 있다.
누구보다 강인해보이는 그녀의 내면은 너무나 여리고 약하단 사실을.
그저 꾹꾹 눌러 참고 있을 뿐이란 것을...
난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런 말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저 내 눈으로 그녀가 무사하단 것을 확인해야 진정될 것 같았다.

내 곁에 사람들이 사라지는 것은 자주 봤다.
익숙하진 않지만 그래도 이젠 담담해질 수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미네르바 맥고나걸 그녀가 사라진다는 걸, 영원히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곳으로 사라진다는 걸 생각하니 어쩐지 숨이 막혀왔다.
그런 것은 싫다.
어린아이 같은 태도지만 이런 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서로 그날 이후로 서로의 비밀을 다시 꺼내 말하진 않았지만 비밀을 공유하고 나서 우리가 가지게 된 강한 신뢰와 동질감이...
그로인해 형성된 우리 둘만의 편안한 느낌이 좋았다.
서로를 존중했기에 형성될 수 있었던 그 평온함은 그 상대가 오로지 그녀, 미네르바 맥고나걸이었기에 가능했단 걸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나와 가볍게 웃으며 지난 시절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녀와 하는 이야기처럼 시간 가는줄 모르고 즐거운 사람은 얼마 없다.

그건 아마도 상대를 배려할줄 아는 그녀이기에, 내가 그녀를 이해하는 만큼 그녀 역시 나를 이해하고 있기에 우리 사이에 흐르는 공기는 우리가 함께 해온 시간만큼이나 깊고 진한 것이리라...

무뚝뚝한 그녀이기에 티도 안 나고 조용하지만 사실 그녀는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다정하고 자상한 사람이다.
남들은 강인하다 말하지만 누구보다 여린 그녀는 나와 비슷하지만 타인을 보듬을 수 있다는 면에서 그녀는 확실히 강했다.

성 뭉고 병원 앞에 도착할 때까지 나는 정말 놀랍게도 도피 중이라거나 내가 잡혔을 때 생길 일이라던가 하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미네르바 맥고나걸 그녀에 대한 생각과 걱정 불안감으로 가득차서 정신없이 달려왔다.
그런데 병원 앞에 도착하는 순간 깨달았다.

지금 내 상황과 위험성을...

미치도록 보고 싶건만 저 앞을 통과해 무사히 그녀의 병실로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뛰어난 애니마구스인 그녀를 가르친 스승이 나건만 내 애니마구스는 불사조라 너무 눈에 띈다.

젠장... 아무리 뛰어난 마법사면 뭘하나.
이럴 때 방법이 없는데...

일단 저녁이 되기를 기다리며 병원 안쪽을 살폈다.

애니마구스하니 처음으로 그녀가 고양이로 변했던 날이 떠올랐다.
눈을 감은 채 집중하는 모습이 귀여워 피식하고 웃고 있던 찰나에 그녀의 몸이 작아지며 고양이로 변했다.
아름다운 은빛 털을 지닌 안경무늬 고양이로...
스스로 변하고서도 어리둥절한지 멍한 표정이다가 생소한 감각에 놀라 털을 바짝 세우는 모습이 귀여웠다.
내 웃음소리에 돌아본 그녀가 불만인듯 야옹거리는 소리를 냈고 난 그제야 거울을 그녀 앞에 내려줬다.
이리저리 거울에 비친 모습을 살펴보더니 만족한 듯 보여 나는 그녀를 안아들었다.
한팔로 다 안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그녀.
마치 무슨 일이냐는 듯 올려다보기에 쓰다듬어주자 나른한 소리를 내며 부비적거렸었다.
그 때의 그 온기와 작은 생명의 감각은 참 포근했었다.

그녀의 애니마구스가 고양이란 것에 많은 사람이 의아해했다.
이해한다.
그녀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양이과더라도 맹수류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할테니까.
하지만 나는 고양이가 그녀의 영혼의 모습에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정말로 고양이 같은 사람이니까.
그리고 애니마구스가 눈에 띄는 동물이라면 조금 귀찮은 일들도 있어서 차라리 고양이 같은 동물들이 더 낫다는 생각이 지금 다시 슬슬 올라온다.

드디어 저녁이 되었다.
어둠이 몰려오고 병문안 왔던 사람들이 빠져나오는 틈을 타서 병원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조용하고도 빠르게 복도를 지나쳐 그녀의 병실 앞으로 가니 불사조기사단 멤버들이 눈에 띄지 않게 숨어서 그녀를 지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에게까지 날 숨길 필요는 없었지만 왠지 조용히 다녀오고 싶은 마음에 그들도 속이고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병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훅 하고 밀려오는 어둠에 잠시 걸음을 멈췄다.
불을 켜는 대신 지팡이를 밝힌 뒤 가벼운 경계 마법을 치고 병실 문에서 바로 보이지 않게 가리개로 가려둔 침대 쪽으로 걸어갔다.

스륵

천 가리개를 손으로 젖혀 열고 침대에 누워있는 그녀를 보는 순간 난 침음을 삼킬 수 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마른 몸이 더 말라 있었다.
하얀 환자복 옷깃 사이로 보이는 가슴부근엔 붕대가 감겨 있었다.
두 눈은 다시 뜨지 않을 것처럼 감고 죽은 듯 잠들어 있는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세월의 흐름에 깊게 파였던 주름이 더 깊어보일 만큼 헬쓱해져 날카로운 인상이 두드러졌다.

"...... 미네르바..."

작게 소리내어 불러보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려오는 모습 앞에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그녀의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화장기 없는 피부의 감촉이 손끝에 와 닿았다.
아주 작은 온기가 느껴졌다.
볼을 손바닥으로 감싸고 한참을 바라보다가 손을 내려 목선과 어깨를 지나 뼈마디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손을 붙잡았다.

아무런 힘도 없이 내 손에 잡히는 그 작은 손을 꽈악 붙잡았다.
내 기운이라도 가져가라고...
그래서 얼른 깨어나라고...
이렇게 누워 있는 것 안 어울린다고...

"...... 미안...하오. 미네르바. 당신을 다치게 해서. 내가 있었더라면... 당신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텐데..."

내가 있었다면 그들이 그런 짓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니 했더라도 내가 막아주었을 것이다.

평소라면 이런 내게 웃으며 그런 말 말라고 하며 작은 농담을 건넸을 그녀였지만 지금은 작게 숨을 내쉬며 누워 있었다.
자신을 희생하는 것에 아무런 망설임이 없는 그녀에게 존경와 미안함을 담아 잡은 손끝에 입을 맞췄다.

그러다 문득 내 영혼이 불사조를 닮았다면 그녀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그녀의 얼굴 구석구석에 입을 맞췄다.
이마 눈 코 볼 턱...
차례로 내려왔지만 입술만은 망설여졌다.

예법 때문에 수많은 여성들의 입술에 가벼운 키스를 해봤었고 갤러트와도, 그리고 그와 헤어진 뒤 만났던 여자들과도 했었지만 망설여졌다.
관계가 망가질까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이상하게 부끄럽고 쑥스러웠다.
이런 순간에조차도 말이다.

그것은 아마도-
오래전에 품었던, 억지로 억지로 정리해 담아두고 이젠 동료일 뿐이라고 말하며 묻어두었던 감정 때문이리라.
필리우스의 말에 아무런 계산 없이 오로지 걱정만으로 이곳까지 달려와 안절부절하지 못하게 만드는 그 감정 때문일 것이다.
오래 전에 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묻어두고 차마 말하지 못했던 그 감정.
좋은 동료관계를 잃지 않기 위해 억지로 스스로를 속이고 묻으려 했던 그 감정은...
그저 그녀를 제자이자 동료로 본다는 말로 더이상 스스로를 기만하게 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듯이 그녀의 소식에 펑 하고 터져나왔다.
그것도 그 때의 그 모습이 아닌 억지로 가두고 묻어버린 긴 시간 동안 점점 더 모습을 부풀린 채로...

이젠 더이상 넌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듯이...
그리고 정말로 난 이제 그 선명한 감정을 더는 속일 수 없었다.

그러나 여전히 난 겁쟁이여서 이렇게 그녀가 못 들을 지금 이 순간에만 말하기로 했다.

".....내가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를거요. 미네르바. 어떤 마음으로 여기까지 달려왔는지, 무슨 정신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지금 누워있는 당신을 보며 내가 어떤 기분인지... 당신은 정말로 상상도 못하겠지. 안 그렇소 미네르바?"

천천히 그녀의 회색빛 머리카락을 쓸어내렸다.
손가락 사이를 타고 흐르는 머리카락은 예전의 윤기를 품고 반짝이던 검은빛을 잃었더라도 여전히 곱고 부드러웠다.

"......너무나 속상하고 안타깝고 화가 나오. 당신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것에... 그리고 몹시도 걱정되오. 당신이 이대로 못 일어날까봐. 당신이 이대로 사라질까봐 두렵소."

내가 잡은 그녀의 손을 내려다보며 자꾸 말라가는 입술을 적셨다.

"항상 생기 넘치고 당당한 당신의 이런 모습, 어울리지 않으니까 빨리 일어나시오. 난 별로 나와 잘 어울린다 생각하지 않지만 내 영혼이 불사조를 닮았다고 하니 당신을 위해 내가 어쩌면 힘을 전해줄 수도 있을지 모르겠소. 당신이 깨어나길 바라며 내 힘이 전달되기만 바라는 수 밖에.... 아마 당신은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어쩌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소. 그저 당신이 빨리 회복되길 바래서도 답이 되겠지만 사실은 당신에게 내가 지금까지 말하지 못했던 것 때문에 그렇소."

말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자꾸 떨려오는 심장에 눈을 감고 쉼호흡을 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오. 미네르바. 그러니 빨리 일어나 돌아와 주시오."

부디 무사히 내 곁으로...
30년을 넘어 40년을 바라보는 세월동안 우리가 함께한 그곳으로 돌아오길...
진심으로 바라며 그 옛날 아리애나가 죽은 날 이후로 찾지 않게 된 신이란 존재에게 빌었다.

내 영혼이 불사조를 닮았다면, 상처를 치료하고 그 어떤 독이라도 해독하는 불사조의 눈물처럼 내 기운이 그녀에게 전해져 깨어나게 해달라고 빌며 조심스럽게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맞췄다.
돌아온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겠지만 한 번 인정한 감정은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터져나왔다.
해리를 지켜주는 릴리의 사랑처럼 내 감정 역시 그녀를 지켜줄 수 있길 바랬다.

천천히 닿았던 입술을 떼고 다시 한 번 그녀의 이마에 키스한 뒤 난 침대 옆 간이 의자에 앉았다.
그녀의 손을 만지작 거리며 그녀가 깨어있을 땐 하지 못할 이야기들을 작게 속삭였다.

어떻게 지금까지 숨겨온건지 모를 정도로 계속 나오는 이야깃거리와 감정들은 이제 앞으로 어떻게 숨겨야할지 걱정이었다.
그녀에게 솔직히 고백해도 되겠지만 거절 당하는 것보다도 그녀가 부담스럽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 싫었고 또 받아주든 거절하든 난 그녀에게 상처를 주게 될 것이 뻔하기에 지금까지처럼 지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건 또 그것대로 슬픈 일이었지만 일단 그녀가 돌아오는 것이 먼저였다.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 믿으며 어느새 하얗게 밝아지는 창문을 봤다.
바깥도 슬슬 소란스러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까 설치한 경계마법을 해제한 후 미네르바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다음에 만나는 건 학교이길 바라겠소 미네르바."

그런 다음 조심해서 손을 내려두고 창문을 조금 연 다음 그대로 불사조의 모습으로 변해 날아갔다.
여전히 불안했지만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을 위안삼았다.
또 내가 계속 옆에 붙어있을 처지가 되지 못하기에 난 내가 지금 해야하는 일을 하기로 했다.
그녀를 다치게 만든 원인인 마법부에 대한 응징과 마법사회에 볼드모트, 그의 존재를 밝히고 계획을 망가뜨리는 일을 말이다.
그리고나서 그녀가 돌아오는 것을 학교에서 맞이하는 것이다.

전과 다름없이 교장과 교감, 동료 교사의 모습 뿐만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로서...




Posted by 설하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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