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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자습실 한쪽이 시끄러워지는 것 같아 보고 있던 변신술 책을 내려놓고 자습실 안을 둘러보던 맥고나걸의 눈에 매해 화제의 중심인 삼인방과 네빌이 들어왔다.
보아하니 론이 과제를 못하겠다고 그러니까 헤르미온느가 나선 것 같은데 네빌까지 있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며 맥고나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습실 안에서 정숙을 깨는 행위는 주의를 주어야 마땅했다.
더구나 여긴 기숙사 거실도 아니고 그리핀도르 학생 전체가 쓰는 자습실이었다.
그들 넷 때문에 다른 학생들마저 집중을 못하고 있었다.

'론은 조금만 더 공부를 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조용조용 넷을 향해 다가가자 다른 학생들이 슥슥 피했다.
드디어 론의 옆에 도착해 멈춰서서 잠시 숨을 고른 맥고나걸이 입을 여는 순간 헤르미온느가 그녀의 말을 끊었다.

"거기 네 사람-"
"론!! 내 책에 짜증내지마! 그렇게 자유 주제가 짜증나면 내가 정해줄게! 베네무스 텐타큘라! 이거면 되지?"

헤르미온느의 행동에 잠시 인상을 썼던 맥고나걸은 헤르미온느의 한 마디 때문에 멈칫하고 말았다.
헤르미온느가 펼쳐서 보여주는 책장에 그려진 수많은 식물들 중 나무를 닮은 듯하지만 줄기에 이빨이 달린 것에 맥고나걸은 시선이 고정되어 버렸다.
주변에서 네 사람의 만행이 어떤 결말을 가져올지 잔뜩 기대하는 얼굴로 보고 있는 학생들이 있었건만 그녀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마주한 지금, 그녀는 평소의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베네무스.....텐타큘라....'

그저 그 이름 하나 들었을 뿐인데 순간적으로 그녀는 1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그녀가 살면서 겪었던 수많은 괴로운 일 중에서 가장 괴롭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났던 순간으로 돌아가버린 맥고나걸의 머리속은 백지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앨핀......!'

맥고나걸은 그녀가 지금까지 살면서 수도 없이 다짐하고 늘 해오던 마음의 동요를 드러내지 않고 침착 냉정한 태도를 유지하는 습관 덕에 동요를 드러내지 않았다.
맥고나걸 역시 인간이었기에 평소 학교 생활을 하며 학생들을 지도하다보면 그녀가 항상 유지하고자 하는 공평하고 엄격한 기준을 지키기 힘들 때도 많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지켜냈다.
항상 침착 냉정하며 객관적이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니 사실은 학교를 다니기 전부터 자신이 마녀란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쓰던 것과 자신의 개인적인 것을 들키길 원치 않았던 것 때문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습관화 되어 있고 노력하던 것이라 하더라도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그녀에게 트라우마라고 불릴 수 있을 정도의 것을 본 순간의 동요를 완벽히 컨트롤 해낼 수는 없었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패닉에 빠져버린 것이었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녀의 표정이나 행동만은 어느정도 통제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평정심을 잃고 패닉에 빠졌음에도 눈동자와 입술의 작은 떨림만이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면 대단한 자기 통제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술렁임과 주의를 주려고 찾아왔던 네 사람마저 의아함을 가지고 있단 사실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굳어있는 맥고나걸의 모습에 다들 평소와 다른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맥고나걸이 동요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없었고 평소와 달리 바로 처벌을 안 하시는 것이 화가 많이 나셨나 하는 학생들과 상대가 상대니만큼 훈계 방법을 새로 바꾸셨나 싶은 학생들이 있었다.
그들은 론과 네빌이 눈치채기 전엔 그 둘이 언제쯤 눈치챌 것인가에 대해 궁금해했을 뿐이었고 지금은 어떤 새로운 방법으로 맥고나걸이 네 사람을 혼내려는 것인지를 기대하고 있었다.
맥고나걸의 정면에 있던 네 사람 중 해리와 헤르미온느를 제외하면 맥고나걸이 뭔가 이상하단 것을 눈치챈 사람은, 아니 이상하다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 맥고나걸은 그녀의 노력이 목표했던 바대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는 공평 공정 엄격의 마스코트였기에 모두의 생각은 당연한 것이었다.

"교수님....?"
"...아...."

그래서 해리가 조심스럽게 그녀를 불렀을 때 그녀의 반응에 다들 갸웃했다.
조금 놀란듯 시선을 돌리는 그녀를 보며 교수님이 잠시 다른 생각을 하셨던 거구나 하고 놀라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러나 맥고나걸은 해리의 부름으로 그녀의 몸의 움직임과 감각까지 앗아가 화이트 아웃 상태로 만들었던 패닉에서 겨우 빠져나왔다.
책에서 어렵사리 시선을 떼고 주변을 보자 조금씩 일그러져 보이는 학생들의 모습에 얼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심장이 불안감으로 미친듯이 두근거렸다.
조금 전까지 무슨 상황이었는지도 잊어버릴 만큼 강렬한 충격에 잠시 맥고나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심장이 떨리고 뛰어대는 만큼 그녀의 손도 가늘게 떨려왔다.
다행히 심장은 내색하지 않으면 아무도 못 알아챌 것이고 손은 소매로 감출 수 있었다.
혹여라도 얼굴이 수습이 안 되었을까봐 얼굴을 돌렸던 맥고나걸은 그녀가 네 사람에게 주의를 주러 왔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 작게 쉼호흡을 해 억지로 평정심을 되찾아왔다.
하지만 감점 외에 더 추가하려 했던 말들은 머리속에서 지워진지 오래였고 다시 떠올릴 여유도 없을 만큼 맥고나걸의 상태는 엉망이었다.

"시끄럽게 소란을 피우다니... 그리핀도르 5점씩 감점이다. 넷 다."
"네..."
"다시 한 번 시끄러워지면 그 땐 벌과 함께 내보낼거야. 조용히 공부하도록."
"알겠습니다."

평소처럼 차분하고 조용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맥고나걸은 겉으로 보기엔 평소랑 조금의 차이도 없었지만 속으론 그녀답지 않게 당황하고 있었다.
자신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이상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쥐어짜내듯 그 말을 하고는 몸을 돌려 자리로 돌아갔다.

맥고나걸의 가벼운 처벌에 학생들은 모두 김이 샌듯 구시렁 거렸고 그런 학생들을 지나가며 지도하는 맥고나걸은 멍한 상태였다.
몸은 습관적으로 학생 지도를 하고 있었지만 뇌에선 그녀가 무슨 행동을 하고 있고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리에 와서 앉아 안경을 쓴 다음 아까 전까지 보던 변신술 책을 펼쳤지만 머리속이 엉망이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진정하자 진정해... 아주 오래전 일이야. 이젠... 괜찮아...'

스스로를 다독이며 책장을 넘기고 양피지 위로 깃펜을 굴렸다.
하다보니 정신도 돌아오고 손떨림도 멈춰서 아까와 같은 평온한 상태로 일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까처럼 개운한 기분이 아니라 우울하고 슬픈 기분이었다.
그런 상태에서도 일에는 조금의 흐트러짐이 없는 것이 대단했다.

"저녁시간이로군. 모두 가서 저녁 먹도록 하세요."
"네 교수님."
"저녁 맛있게 드세요 교수님."
"그래. 좋은 저녁 보내렴."

저녁 식사시간이 된 것을 알리고 책과 양피지를 챙기고 있는데 학생들이 인사를 하며 나갔다.
학생들의 인사에 대꾸하던 맥고나걸은 대부분의 학생이 나가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미뤄뒀던 우울함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습실 정리를 하고 나가려는데 아직 자습실을 나서지 않은 네 사람이 보였다.

'....? 할 말이 있는건가?'

책과 양피지를 들고 네 사람에게 다가가자 넷이 그녀를 돌아봤다.

"포터, 위즐리, 롱바텀, 그레인저. 여기 서서 뭐하니?"
"예?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수님."
"그래?"
"네."

해리의 말에 갸웃하면서도 왠지 자신을 관찰하는 것만 같은 눈빛에 괜히 얼굴을 한 번 쓸어보고 자습실을 나서려고 걸음을 옮겼다.

"그럼... 말썽 부리지 말고."
"네..."
"이러다 저녁 시간을 놓치겠구나. 얼른 가서 저녁 맛있게 먹고... 포터와 위즐리는 오늘 저녁 연습 잘 하렴."
"네. 교수님도 좋은 저녁 되세요."
"그래."

해리와 헤르미온느의 시선에 뭔가 불편함을 느낀 맥고나걸은 서둘러 네 사람을 뒤로 하고 지팡이를 휘둘러 불을 끄고 커튼을 쳤다.
자습실을 나서서 평소와 같은 걸음걸이로 힘차게, 하지만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붙잡지 못하게 도망치듯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모퉁이를 돌아 아무도 없는 복도를 걸어가던 맥고나걸은 뒤에서 따라오는 기척도, 부르는 소리도 없자 발걸음을 늦췄다.

조용한 복도를 걸어가며 맥고나걸은 아까까진 일을 하느라 미뤄두고 있었던 기억들을 천천히 곱씹었다.
이젠 괜찮다고 묻어두었던 기억들이 하나하나 떠오를 때마다 가슴을 쿡쿡 쑤셔오는 정체모를 것에 맥고나걸은 괴로워했다.

'...미네르바... 정말... 일을 그만둘건가..?'
'미안해요 앨핀스톤. 하지만 이곳은 나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미네르바... 당신처럼 능력있는 사람이... 이런 승진은 유례가 없던 일이야.'
'알아요. 하지만 내겐 승진이나 출세보다 더 중요시하는 게 있어요. 난 내가 하며 행복한 일을 하고 싶어요. 이곳에서 아마 난 남들이 선망하는 데까지 남들보다 빨리 갈 수 있겠죠. 하지만 행복하지 않을거에요. 살아도 살은 게 아니겠죠. 그래서에요.'

마법부를 떠나던 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순수혈통 우월 주의자들로 가득찼던 그곳에서 맥고나걸은 버티기 힘들었다.
더구나 첫사랑이었던 두걸의 청혼을 거절하고 도망쳐서 힘들어하던 그 당시의 맥고나걸은 정말로 그곳에서 그녀를 잃어버리고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가치관과 기준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 틈에서 그녀를 챙겨주었던 착하고 다정한 상사가 없었다면 아마도 그녀는 훨씬 더 빨리 자신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일을 그만둬야 하는 것인가를 고민했지만 두걸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을 잊기 위해서라도 스스로를 일에 밀어넣었었고 그녀를 표현하는 전형적인 말이 되어버린 책임감과 성실함 때문에 그 고민의 답을 실천으로 옮기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덤블도어의 편지가 도착했다.
그녀가 먼저 보낸 일상적인 안부편지에 학교는 어떻냐는 물음을 덧붙여 보냈는데 덤블도어는 답장에 호그와트 변신술 교수 자리와 기숙사 사감직을 맡아주면 어떻겠냐는 답을 달아 보내주었다.
그의 편지에 맥고나걸은 지금까지 고민하면서도 내려둘 수 없었던 일을 미련없이 그만두고 나왔다.
그녀에게 유례없는 고속 승진이란 결과가 내려왔음에도 그녀의 발걸음엔 망설임이 없었다.
맥고나걸의 능력과는 상관없이 그녀가 혼혈이란 것 때문에 깔보고 무시했던 사람들은 그녀가 퇴사한다는 것에 코웃음을 쳤지만 단 한 사람, 앨핀스톤만은 진심으로 아쉬워했었다.
그의 아쉬움과 걱정이 스민 눈빛에 맥고나걸은 그녀가 그곳에서 일하면서 보여준 적 없었던 개운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자신의 상사에게 말했었다.

"......그렇게 다시 만날거라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그 당시 앨핀스톤은 그녀에게 좋은 상사였지만 그렇다고 자주 왕래할 생각이 드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맥고나걸은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다른 교수들처럼 학교 밖에 따로 집을 마련하고 지냈던 것이 아니라 호그와트 내의 교수방에서 계속 지냈기 때문에 더더욱 만날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맥고나걸이 변신술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 앨핀스톤은 그녀를 만나러 왔었다.
자신을 찾는 손님이 있다는 말에 나갔다가 손님이 그란 것을 알았을 때 맥고나걸은 당황한 얼굴을 숨기지 못했었고 앨핀스톤은 사람좋게 웃으면서 내가 온 것이 그렇게 뜻밖의 일이냐고, 싫은 것이냐고 장난스럽게 말했었다.
그의 말에 더 당황해 그녀답지 않게 말이 꼬여버리긴 했었지만 놀람이 가라앉자 태연하게 받아칠 수 있게 되었었다.

'미네르바 그동안 별 일 없었소?'
'....날이 좋은데.... 시간 좀 내줄 수 있소?'
'마음에 들진 모르겠지만 선물이오.'

앨핀스톤은 그 후로도 그녀를 자주 찾아왔고 올 때마다 작은 선물을 가져왔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마음을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고 그의 호의를 마냥 감사하게만은 받아들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앨핀스톤은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기에 그녀가 불편해한다는 것을 알자 그녀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행동했다.
서서히 맥고나걸 역시 앨핀스톤과 점점 가까워졌고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주고 받을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한 사이가 되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앨핀스톤은 그녀에게 청혼했다.

'미네르바... 내가 당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것 때문에 망설였지만....'
'앨핀스톤..?'
'......좋아하오.'
'.......'
'최선을 다해 당신이 행복할 수 있게 해주겠소. 그러니 부디 나와 결혼해주겠소..?'

어떤 미사여구도 없이, 하지만 더없이 진실된 말로 그는 정면으로 부딪쳐왔다.
잔뜩 떨리는 그의 음성과 눈동자를 보며 맥고나걸은 잠시 할 말을 잃었었다.
평소와 달리 긴장한 그 때문인지 갑자기 얼어붙었던 둘 사이의 분위기에 주변마저 고요했었다.

"...그 때가 가장 긴장된 순간이었노라고 했었지... 당신은...."

그 때를 떠올리며 어느새 앞마당이 보이는 복도까지 걸어와버린 맥고나걸은 겨울이 되어 시들어버린 풀잎 위로 내려앉기 시작한 어둠을 가만히 바라봤다.

'......미안해요. 앨핀스톤. 하지만 나는 아직... 아직은...'
'괜찮소. 알겠으니 더 설명하지 마시오.'
'....정말 미안해요.'
'괜찮다니까. 그래도 이 일로 날 멀리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미네르바.'
'네?'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말이오.'
'....그럼요...'

그의 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가 좋은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직 첫사랑을 잊지 못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 때문인지 거절해버린 맥고나걸은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담아 그를 봤었다.
괜찮다고 말하며 애써 웃어보였지만 그녀의 대답에 그는 처음에 굉장히 실망한, 어쩌면 상처받은 것도 같은 얼굴을 했었다.
미안해 하는 자신을 위해 억지로 웃어보이려는 그의 얼굴은 평소의 얼굴이 아니었다.
잘게 떨려오는 그의 목소리에 미안함과 죄스러움을 느꼈었다.
그를 더 볼 수 없어 고개를 푹 숙인 그녀를 보고 앨핀스톤은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더니 평소의 장난끼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한 번 거절했다고 너무 그러지 마시오.'
'...?'
'난 계속, 당신이 날 좋아하게 되도록 노력할테니까.'
'앨핀스톤...'
'하지만 당신이 날 받아주기 전까지 좋은 친구의 자세를 유지할 것이오. 그러니 걱정마시오.'

그의 밝은 목소리에 얼굴을 드니 평소 같은 밝은 얼굴로 한쪽 눈을 찡긋하며 말하는 앨핀스톤이 보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익살스런 농담에 함께 웃었었다.

"그래... 생각해보면 당신은 내게 늘 부담이 되지 않으려고 했었죠. 내게 항상 웃음을 주는 사람이었어요. 다정하고 편안한, 의식하지 못했지만 어느새 자연스럽게 자신의 존재를 새긴 사람이었죠."

앞마당으로 나가는 문에 기대어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맥고나걸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밤하늘 위에 수많은 별들을 올려다 보던 그녀의 눈에 은하수를 가로지르며 사라지는 별똥별이 보였다.
아직도 눈을 감으면 선명히 떠오르는 그의 얼굴과 미소에 잊었노라고, 이젠 슬픈 일은 잊고 좋은 일만 떠올릴 수 있다고, 더이상 아프거나 괴롭지 않다고 했던 자신의 말이, 생각이 오만이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청혼을 거절당한 이후에도 앨핀스톤은 그녀를 자주 찾아왔었다.
마법부 일로 바빴을텐데도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주 그녀를 만나러 왔었고 맥고나걸 역시 어느 순간부터 그를 기다리는 자신을 눈치챘었다.
그런 자신을 눈치챈 다음엔 씁쓸하게 웃었으면서도 그녀는 그와의 아슬아슬한 관계를 더 발전시키려 하지 않았다.
앨핀스톤 역시 굳이 그 선을 넘으려고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랬기에 그들의 관계가 유지되었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앨핀스톤이 맥고나걸을 찾아오는 것을, 그 두 사람이 만나는 것을 안 제임스와 그의 친구들은 짓궂게도 그것을 놀렸고 맥고나걸이 그들을 혼냈지만 멈추지 않았다.
앨핀스톤은 그들의 놀림에 멋쩍은 웃음과 쑥쓰러워 하는 얼굴을 하다가도 너무나 진지하고 당당한 얼굴로 그녀에 대한 마음을 말해서 그 자리에 같이 있었거나, 전해 들었던 그녀의 얼굴을 붉게 물들게 했었다.

"맥고나걸 교수님 여기서 뭐하세요?"
"아무것도 아니다."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맥고나걸은 자신의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자신을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는 여학생에게 대충 둘러대고 맥고나걸은 얼른 그 학생을 뒤로 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각자가 갈 곳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복도에 많아지자 맥고나걸은 다시 걸음을 옮겨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깔끔하게 정리된, 그녀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방엔 불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단촐했다.
어찌보면 삭막하기도 하고 무미건조하게도 보이는 방에 들어선 맥고나걸은 책과 양피지를 책상에 내려두고 모자를 벗었다.
이미 저녁 식사 시간은 끝나서 대연회장으로 내려갈 생각이 없었기에 그녀는 옷을 갈아입었다.
갈아입은 옷을 방 한켠에 있는 옷걸이에 걸어두고 돌아서던 맥고나걸의 눈에 책상 위에 올려진 몇 안 되는 액자들이 들어왔다.
가만히 액자들을 보다가 흑백으로 된 많은 사람들이 찍힌 사진을 들어올린 그녀는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찾고는 가만히 들여다 봤다.

'.....꼭..... 기사단에 가입해야겠소 미네르바?'

덤블도어에게 그 역시 제안을 받았던 터라 그녀의 가입 사실을 알게 된 앨핀스톤은 그녀를 찾아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이미 죽음을 먹는 자들과 싸울 각오를 세웠던 맥고나걸은 그의 걱정에 담담한 태도로 말했다.

'네. 그들은 옳지 못한 일을 저지르려 하고 있어요. 난 그걸 막고 싶어요. 그들에게 희생되는 것은 죄없는 머글 태생과 나 같은 혼혈일테니까요.'
'미네르바 난....'

담담한 그녀를 보며 뭐라 말을 잇지 못하던 앨핀스톤은 체념한 얼굴로 한숨을 내쉬더니 굳건한 눈으로 그녀에게 말했었다.

'난 비록 겁쟁이라 가입하진 못했지만 마법부에서 근무하고 있소. 거기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라면 힘 닿는대로 도와주겠소.'
'앨핀스톤...! 그렇지만 그러면....'
'내 걱정은 마시오. 대신 몸조심 해야하오, 미네르바.'

그렇게 웃어보인 앨핀스톤은 그 뒤로 맥고나걸을 통해 마법부 내에서 귀중한 정보를 기사단에 전달했다.
그러다 제임스와 릴리가 볼드모트의 손에 죽고 해리를 죽이려던 그가 사라진 뒤 죽음을 먹는 자들이 대거 아즈카반으로 잡혀가고 평온한 시대가 시작되었다.
볼드모트가 죽은 직후는 혼란스러웠지만 대략 1년이란 시간이 흐르자 조용해졌다.
마법 세계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다.

어느덧 50을 넘긴 맥고나걸은 여전히 호그와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앨핀스톤 역시 그녀를 자주 찾아왔었는데 평화롭던 어느날 그는 다시 한 번 용기를 내서 청혼했다.
호숫가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조심스럽게 꺼낸 그의 청혼을 맥고나걸은 받아들였다.
이미 몇 해 전에 고향에 계신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의 첫사랑인 두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줬고 맥고나걸은 그에 충격을 받고 잠시 흔들렸었지만 드디어 정리를 끝낼 수 있었다.

늦은 나이에 한 결혼이라 조촐하게, 하지만 친한 지인들을 불러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은 호그스미드의 한 오두막집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맥고나걸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던 앨핀스톤은 이미 마법부에서 은퇴했었기에 맥고나걸이 출퇴근 하기 편한 호그스미드에 자리를 잡은 것이었다.
그녀가 청혼을 받아줬을 때, 결혼식을 올릴 때 그의 얼굴을 맥고나걸은 아직도 잊지 못했다.
그리고 그 뒤에 그와 함께한 시간들은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한 번 묻어두고 있던 것을 떠올리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이 밀려오는 과거의 기억에 맥고나걸은 의자에 앉아 마음을 다스리려고 했다.
이렇게 감정에 휩쓸리면 자신을 통제할 수 없기에 항상 자신을 꽁꽁 싸매며 단속하는 맥고나걸은 학생들에게 엄격하고 공평한 것 이상으로 자신에게 더더욱 철저했다.
하지만 아무리 스스로를 다그쳐도 뜻대로 통제가 안 되는 경우가 있었다.
바로 지금같은 경우가 그랬다.

이젠 더는 곁에 없는 사람들이나 가지고 있었지만 잃어버린 것 때문에, 알아버린 따스함과 행복이란 것이 사라져 버린 지금 항상 마주하고 있는 공허함과 허무함에 무너지지 않으려고, 괴로워하지 않으려고, 이러한 자신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무딘 애를 쓰지만 힘겨울 때가 있었다.
남들이 강인하다 말하는 그녀였지만 사실은 강해보이는 그 이면에는 누구보다 인간적이고 약한 본질적인 모습이 존재하고 있었고,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괴로워하고 아파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힘들다고, 아프다고 몇 번은 말하고 토해내며 괴로워했을 것을 오롯이 혼자 속으로 눌러 삼키며 인내하고 있었다.
몇 배로 힘겨워 하면서도 그녀는 남들에게 보이는 자신을 한결같이 유지하고 있었다.

가슴 한 구석이 비어버린 아릿한 고통을 삼켜내며 맥고나걸은 애써 스스로를 다스리려고 했다.
자꾸 터져나오는 기억들과 감정들을 누르려고 애를 쓰며 맥고나걸은 스스로를 세게 끌어안았다.
벽난로에 불을 때지 않아 싸늘한 방 안에서 자신을 세게 끌어안으며 바깥에서의 한기가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오는 한기를 이겨내려고 했다.
누구도 없는 자신의 방에서마저도 그녀는 마음껏 자신을 풀어두지 않았다.



"...!"

그러던 중 그녀가 앉은 의자 앞에 있던 책상 위로 편지가 떨어졌다.
얼른 자신을 안고 있던 팔을 풀고 그녀는 편지를 집어 들고 뜯었다.
발신인은 덤블도어였다.

'미네르바. 오늘 저녁 교수 모임이 있으니 9시까지 교장실로 오시오. -알버스'

길고 유려한 필체로 휘갈겨 쓴 편지를 본 맥고나걸은 자신을 집어삼킬 듯 일렁이던 기억과 감정들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사라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조용해진 그것들을 다시 덮어두며 맥고나걸은 시계를 바라봤다.
오후 8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본 맥고나걸은 다시 옷을 갈아입고 방을 나섰다.
눌러두고 잊고 있었던 기억과 감정들은 그녀가 다시 떠올린 지금을 기회라 생각하는지 계속 그녀의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얌전히 있었다.
그랬기에 맥고나걸은 교장실에 도착해 평소처럼 행동할 수 있었다.

"일찍 왔구려 미네르바."
"보자마자 왔으니까요. 알버스."

그녀가 교장실에 들어서자 반갑게 울며 그녀의 어깨에 앉은 퍽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맥고나걸이 덤블도어를 바라봤다.
언제나 깊고 평온한, 사람을 꿰뚫어 보는 것만 같은 그의 푸른 눈동자와 마주하자 흔들리는 자신의 내면을 들킨 것만 같아 맥고나걸은 짧게 숨을 들이쉬었다.
덤블도어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지팡이를 휘둘러 간단한 간식거리를 불러냈다.
맥고나걸에게 자리를 권하며 간식을 그녀의 앞에 내려둔 그는 그녀의 옆, 그녀를 마주볼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다른 교수들이 늦는군요."
"그들에겐 10시라고 알렸으니까."

자리에 앉으며 맥고나걸이 다른 교수들이 오지 않는 것에 의문을 표하자 덤블도어는 당연하다는 듯 대꾸했다.
맥고나걸은 큰 눈을 좀 더 크게 떴다가 미간과 콧등을 찌푸리며 말했다.

"알버스. 대체 왜 그런..."
"일단 샌드위치라도 들지 않겠소 미네르바? 오늘 하루 당신에게 꽤나 고되었던 것 같은데... 저녁 식사 자리에도 안 나타나지 않았소."

맥고나걸의 말을 자르며 덤블도어는 그녀에게 먹을 것을 권했다.
자신이 그것을 먹지 않으면 유들유들하게 대답을 회피할 것을 알기에 맥고나걸은 마음에 들진 않더라도 일단 샌드위치를 들어서 한입 베어물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으로 채워진 샌드위치였던 데다가 맛까지 있었기에 찌푸려졌던 얼굴은 금세 펴졌다.
샌드위치를 먹다 자신을 지그시 보며 엷게 웃고 있는 덤블도어를 본 맥고나걸은 문득 지금 이것이 그가 자신을 챙겨준 것이란 것을 깨달았다.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알버스."
"이정도로 뭘 그러시오. 그보다도... 오늘 많이 힘들었소 미네르바?"

그녀가 표한 감사에 덤블도어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곤 반달 안경 너머로 조심스럽게 그녀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맥고나걸은 평소처럼 시크하게, 하지만 어딘가 씁쓸하고 지친 듯한 얼굴로 웃어보였다.

"네. 조금... 많이 힘드네요."
"그렇소?"
"....네.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더 그런 것 같아요."

덤블도어 앞에서는 그나마 솔직하게 자신을 털어놓는 맥고나걸이 그녀답지 않게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자세히 설명하진 않았지만 그녀의 지치고 무너진 모습과 목소리에 덤블도어는 더 깊이 물어보지 않고 조용히 따뜻한 잔에 담긴 브랜디를 건넸다.
맥고나걸은 감사를 표하며 그것을 마셨고 덤블도어는 퍽스를 쓰다듬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맥고나걸은 그 조용한 분위기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편안하게 느꼈고 그가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지만 위로의 말을 들었을 때보다 더한 위로를 받았다.
그것은 학창시절 가장 가까웠던 스승이자 근 40여년을 함께한 동료라는 이름의 깊은 유대감에서 오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때문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서 미묘한 분위기가 흘렀다.
아무런 말도 오가지 않았지만 묘하게도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다독여주는 것만 같은, 그런 부드럽지만 어딘가 아픔을 품은 것만 같은 공기가...
실제로 두 사람은 서로 닿지 않았지만 손을 뻗는다면 충분히 닿는 거리에서 약간의 공간을 두고 떨어져 있었음에도 그 미묘한 기류 탓인지 가까이서 서로를 다독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어떠한 말도 오가지 않는 상태로 얼마나 있었을까...
아릿한 부드러움이 섞인 기류로 가득찼던 교장실 안에 정적을 깨는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한 손에 브랜디가 든 잔을, 다른 한 손엔 빵 부스러기를 쥐고 있던 맥고나걸이 돌아봤다.
덤블도어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들어오라고 말했고 퍽스는 맥고나걸의 손에 있는 빵 부스러기를 쪼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스네이프가 들어왔고 그 뒤를 이어 플리트윅과 스프라우트가 차례로 들어왔다.
그들이 오자 덤블도어는 그들을 부른 이유를 설명해주며 이야기를 시작했고 맥고나걸을 비롯한 각 기숙사 사감들도 이야기를 시작했다.
공적인 이야기가 끝나고 사적인 이야기로 접어들어서 각자 좋아하는 음료를 마시기 시작한 교수들은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 맞아. 올해는 텐타큘라의 성장이 좋아서 질 좋은 마법약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그것 참 다행이군요."

스프라우트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밝은 목소리로 말했고 스네이프는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특유의 어조로 대꾸했다.
하지만 그가 흥미로워 하고 있다는 것은 살짝 들린 입꼬리에서 알 수 있었다.
덤블도어는 그런 두 사람을 미소 띈 얼굴로 보다가 맥고나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플리트윅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던 맥고나걸의 얼굴과 어깨가 미묘하게 굳어있었다.
그걸 본 덤블도어의 푸른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그러나 굳었던 것은 찰나였고 플리트윅의 말에 약간은 과장스런 반응을 보여주며 대답한 맥고나걸은 스프라우트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텐타큘라는 위험하기도 하지만 그 위험성만큼이나 효용성이 커서 기를만한 것 같아요. 물론 키우기가 까다로워서 문제긴 하지만요. 안 그래요 포모나?"
"오 그렇죠. 정말이지 텐타큘라만큼 활용도가 높은 식물도 없을거에요."
"그래도 난 그게 싫어요."

맥고나걸이 약간 인상을 쓰며 말하자 스프라우트는 갸웃하다가 아차 하는 얼굴을 했다.
살짝 취기가 돌아 내심을 말해버린 맥고나걸의 모습에 스프라우트는 놀라면서도 그녀가 안쓰러웠다.
아무리 취기라고 하더라도 평소라면 드러내지 않았을 속마음을 들어버린 스프라우트는 어두워진 맥고나걸의 얼굴을 보며 어쩔 줄 몰랐다.

"자, 밤이 깊었으니 이제 돌아가서 쉬는 것이 좋을 듯한데..."
"네. 그게 좋겠네요."
"교장선생님도 쉬세요."

그런 스프라우트를 도와주려는 것인지 덤블도어가 나서서 모임을 끝내는 말을 했고 스프라우트는 얼른 그것을 받았다.
다른 두 교수도 동의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신이 마신 것을 치운 세 교수는 인사를 하고 나갔다.
맥고나걸도 일어나 나가려는데 덤블도어의 한 마디가 그녀를 붙잡았다.

"가끔은 힘들지만 스스로를 풀어두는 것도 필요하네. 미네르바. 두렵겠지만 자신을 마주봐야 할 때도 있어. 그것이 오래되고 아프면 아플수록 더더욱 말이네."
"......충고 고맙네요 알버스. 그럼 내일 뵙도록 하죠."
"그러지. 조심해서 들어가시오 미네르바."
"조심이랄 것 있나요. 성 안인데."
"오... 그래도 혹시 모르지 않소."
"네. 좋은 밤 보내시길."
"아 미네르바. 다음 호그스미드 방문일에는 한잔하는 것이 어떻소?"
"....그러죠 알버스."

덤블도어의 말에 돌아보지 않고 쓴웃음만 짓던 맥고나걸은 인사를 하고 교장실을 나섰다.
허공을 걷듯 약간 휘청이며 걸어서 자신의 방에 도착한 맥고나걸은 책상 서랍을 열고 작은 케이스를 하나 꺼내들었다.
케이스를 열자 보이는 것은 심플한 디자인의 반지였다.
그것을 내려다보며 맥고나걸은 인정했다.

오늘 학생들의 책을 보고 갑자기 떠올린 것이 아니었다.
언제나 인식하지 않으려고 애를 쓴 것 뿐이었다.
조금 전 스프라우트의 말처럼 그녀가 그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요인들은 평소에도 많았고 그것에 동요하지 않게 무감각해지려고 했었다.
평소에 가능하면 지나간 것을 떠올리려 하지 않고 학교 생활에 집중하려고 하는 자신을 인정했다.
오늘 이렇게 흔들려버린 것은 호그스미드 방문이 다음주라는 사실과 우연히 서랍을 열었다 발견 해버린 반지 케이스 때문이란 것을 인정했다.

"........어쩌면 난 도망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앨핀. 난 당신이 말한대로 용감하지 않은지도요..."

반지를 쓸어보며 맥고나걸은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언젠가 마주해야 하는데... 아직은 그럴 용기가 나지 않네요.'

그날 밤 맥고나걸의 창문에 불이 꺼진 것은 동이 터올 무렵이었다.

그 다음날 맥고나걸은 평소처럼 생활했고 삼총사는 전혀 이상한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호그스미드 방문일이 될 때까지 맥고나걸은 마치 그날의 흔들림이 거짓이었다는 것처럼 생활했다.

호그스미드 방문일 아침
맥고나걸은 호그스미드를 방문하려는 학생들을 모아서 확인증을 검사하고 내보냈다.
학생들을 다 보내고 확인증을 갈무리한 맥고나걸은 바깥의 추위에 대비해 옷을 단단히 입고 학교를 나섰다.

그녀의 발걸음은 호그스미드 중심부의 스리 브룸스틱스가 아닌 외곽으로 향하고 있었다.

Posted by 설하월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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