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ten by 하늘솔
* 간만에 연성해보겠다고 했는데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네요.
* 제 캐해석 대로 제 입맛대로 썼습니다. 안 맞으실 수도 있으니 그런 분들은 뒤로 가기 를 누르는 것을 권장합니다. 특히 백합 싫어하는 분들요.
* 크로스오버 소설로 영화 「악녀」 「미옥」 「타짜」 의 등장 인물들이 나올 예정입니다. 다른 영화나 드라마의 인물들도 추가될 가능성 있습니다.
* 영화 원작에서 제가 조금 바꾼 설정도 있고 시간 축을 좀 비틀기도 했습니다. 네...
* 일단 악녀의 경우 영화 이후 시점으로 숙희는 경찰에게 결국 붙잡혔는데 권숙이 자신이 보호하는 조건으로 해서 비밀 조직 소속 킬러 겸 교관으로 데리고 나옵니다. 그래서 같이 살게 된지 2년 여가 지났다는 설정입니다.
* 수위...는 뭐. 기대하진 마시고. 분량도 제 상태따라 다를 예정입니다.
* 커플링... 쓰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쓰면서 엮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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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처럼 살지 않길 바랐는데..."
왜인지 숙희의 머릿속엔 예전 녹음본에서 들었던 숙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짙은 감정과 기억이 묻어났던 그 목소리가...
*
오늘 아침은 평소와 다른 분위기였다. 적어도 그 날 이후 숙과 같은 공간에서 지내며 생활한 이후로는 처음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작스럽지는 않았다. 얼마 전부터 아슬아슬한, 뭔가가 바뀔 듯한 기류가 흘렀기 때문이다. 물론 며칠 전엔 그런 기류가 뚝 끊기고 평소와 같아졌지만 이렇게 오늘을 맞으니 그 기류들이 오늘을 예고하는 바람이었음을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오늘은... 평소보다 준비를 좀 더 단단히 해두도록 해."
간단하지만 정갈하게 차려진 아침 식탁 앞에서 말하는 숙이 입고 있는 셔츠는 어제 입고 나갔던 것임을 어렵지 않게 알아챌 수 있었다. 그것과 더불어 풍겨오는 옅은 알코올 향에 숙희는 다시금 숙의 얼굴을 살폈다.
밤을 샌 듯 깊게 파인 눈가와 흐트러진 머리카락, 심란함을 숨기지 못한 어두운 안색까지. 그간 숙희가 봐온 숙의 모습들 중에서 가장 빈틈이 많은 모습이었다. 식욕이 없는 듯 찬물만 조금 마시고 이마를 짚는 모습에 숙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숙취 해소제와 두통약을 찾아왔다.
"알았으니 단장님부터 챙기세요. 지금은 지나가던 어린애도 쉽게 이기겠네요."
"...... 그래."
긴 텀을 두고 답한 숙이 숙희가 건넨 약을 챙겨 입에 털어넣었다. 그런 숙을 관찰하듯 살피며 숙희는 제 몫의 토스트에 딸기쨈을 발라 한입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간만에 호기심이 고개를 드는 것을 느끼며 숙희는 어쩌면 오늘 보게 될 일에서 자신이 몰랐던 숙의 일면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에 작게 떨었다. 그간 숙과 함께 지내면서 일이 있을 때마다 겉으로 보여주던 모습과 달리 혼자 무너지는 것을 우연치 않게 발견했었다. 물론 지금처럼 넋이 나간 것은 처음이었지만...
그런 숙희를 아는지 모르는지. 평소라면 귀신 같이 알았을 숙은 딴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대로 두면 빈속으로 나갈 기세기에 숙희는 한숨을 쉬며 숙을 일으켜 세웠다. 의아한 기색으로 저를 보는 숙의 등을 떠밀어 욕실로 향하며 숙희는 시계를 확인했다.
"이러다간 준비도 못 하고 나가겠네. 몇 시까지 나가야 하는 거에요?"
"오후 2시."
"서둘러요. 저도 준비해야 하니까."
대답도 듣지 않고 문을 닫아버린 숙희를 돌아보던 숙은 고개를 돌렸다가 욕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들고 옷을 벗고는 샤워기를 틀었다. 정신이 번쩍 들 정도의 찬물이 비처럼 쏟아지는 샤워기 아래로 들어서는 숙의 몸엔 크고 작은 흉터들이 가득했다. 마치 차가운 물에 상념이 씻겨 나가길 바라듯 한참 물을 맞으며 서 있던 숙은 이내 정신을 차린 듯 빠른 손길로 씻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의 시간에 비해 현저히 적은 시간 안에 씻고 걸어둔 수건으로 몸을 닦다가 거울을 본 숙은 제 가슴 부근의 짙고 큰 흉터를 손으로 어루만졌다. 이어 허벅지의 붉은 흉터 역시 쓸어보고는 입술을 앙 다물었다. 뭔가가 울컥 솟구친 듯 입술을 지그시 깨무는 숙의 얼굴 위로 무언가가 빠르게 스쳐갔다.
똑똑-
"다 씻었어요 단장?"
"..... 어. 나가."
그때 마침 들려온 노크 소리에 욕실을 가득 채웠던 기묘한 기류가 깨졌다. 숙은 얼른 거울에서 시선을 돌리며 가운을 잡아 걸쳤다. 허리끈으로 앞을 여미고 덜 마른 머리를 수건으로 덮은 채 문을 여니 숙희가 서 있었다. 그에 얼른 자리를 비켜주듯 숙이 욕실에서 나오자 숙희는 씻고 나온 숙을 한 번 살폈다.
"... 왜."
"아뇨. 옷은 늘 입으시던 대로 준비해뒀어요."
"...."
"어째 오늘은 영 딴 사람 같으시네요 단장."
그 말을 끝으로 욕실로 들어간 숙희가 문을 닫았다. 숙은 그런 숙희의 뒷모습을 멀거니 바라보다가 방으로 향했다. 화장대 옆 옷걸이에 걸린 하얀 셔츠와 검정 바지, 그리고 자켓. 평소 입던 것과 큰 차이는 없는 옷가지를 잠시 바라보다가 숙은 화장대 앞에 앉았다.
'나는 오늘 과연 널 마주하고도 평소 같을 수 있을까.'
작은 흔들림이 이는 눈동자가 거울 속에서 숙을 향하고 있었다. 이내 거울 속 얼굴의 입술이 움직여 자조적인 미소를 만들어냈다. 그럴리가. 라고 말하는 듯한 얼굴에 숙은 시선을 내려 화장품을 집어들었다.
"... 그래도 미룰 수 없어."
해내는 것 외엔 다른 답은 없어.
느릿한, 그러나 단호한 목소리가 나직히 울리고 상념을 끊어내는 듯 망설임 없는 손길이 연신 화장품을 찍어 얼굴에 발랐다. 무엇인가를 숨기듯 평소보다 공을 들여 화장을 한 숙은 가운을 벗고 특수 제작한 방검 조끼를 착용했다. 그리고 그 위로 옷걸이에 걸린 옷을 하나씩 걸쳤다. 단추 하나를 잠그는 손동작에도 무언가 결의가 차있어 어딘가 경건한 모습이었다.
느릿하지만 꼼꼼하게 옷 사이사이 무장을 한 숙이 마지막으로 자켓 위에 코트를 걸치자 노크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역시나 준비를 마친 듯한 모습의 숙희가 이동식 집 전화를 들고 들어왔다. 살짝 굳은 표정을 보아하니 상부인 모양이다. 작게 나오려는 한숨을 삼키며 전화를 받아든 숙은 장롱 문을 열고 뒤적이며 수화기 너머 상대의 말을 들었다.
"... 알겠습니다. 다녀와서 처리하도록 하죠."
10분여의 통화 끝에 숙은 간결한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눈치를 보듯 방문 근처에 서있던 숙희가 얼른 다가와 전화기를 받았다. 숙은 전화기를 건네주고 장롱에서 커다란 가방 하나를 꺼냈다. 그 속에 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숙희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이거 차에 싣고... 아무래도 오늘 외출 이후에 계획은 전면 수정되어야 할 거 같다."
"하아. 저도 그럼 챙겨가야 하나요?"
"필요한 건 챙겨야겠지."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 동행은..."
"일단 오늘 일정엔 나와 너, 그리고 애들 둘 정도. 볼일이 끝나고 지금 들어온 일엔 몇 더 합류할거야. 그건 나중 일이고. 얼른 챙겨서 나와."
"네-"
숙이 건넨 가방을 챙겨든 숙희가 방을 나서고 숙은 핸드폰을 꺼내 빠르게 문자 몇 통을 보냈다. 그리고 방을 나서려다 멈칫하더니 걸음을 돌려 화장대 서랍을 열고 작은 병 하나를 꺼냈다. 고민하듯 한참 들여다 보던 숙은 이내 결심한 듯 그것을 손목 안쪽과 옷깃에 뿌렸다. 병을 넣고 손목 안쪽을 목덜미에 톡톡 두드리자 향이 코로 들어와 숙은 잠시 멈칫했다.
'... 선물.'
무심한 듯한 목소리가 떠올라 입술을 깨문 숙은 그 잔상을 떨쳐내듯 코트 자락을 털며 밖으로 나갔다. 짐을 챙겨든 숙희를 보고는 그대로 집을 나서는 숙의 걸음이 빨랐다. 평소처럼 숙희가 뒤따름에도 별 말없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고 숙희 역시 냉정한 얼굴로 그 옆에 섰다. 두 사람이 지하에 도착하니 썬팅이 된 검은 차가 시동이 걸린 채 대기하고 있었다. 차의 뒷좌석에 숙과 숙희가 올라타자 운전석에 있던 남자가 차를 출발시켰다. 밖으로 나서자 환한 빛이 쏟아져 인상을 썼던 숙은 어느 새 화사하게 변한 나무들에 잠시 멍해졌다.
그녀가 인지하지 못한 새에 어느 덧 봄이 도래해 있었다. 하는 일이 일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세월에 무뎌져버린 탓인지. 일 때문이 아니라면 계절 변화를 신경쓰지 않았던 숙은 갑작스레 마주한 따뜻해진, 어딘가 달콤한 것도 같은 공기에 속이 울렁이는 것만 같았다.
한편 같은 차 안에 있던 숙희는 평소 맡지 못한 향이 차 안에서 나자 그 원인을 찾다가 숙에게서 난다는 것을 깨닫고 흠칫 놀라고 말았다. 향수라도 뿌린 건가. 아까는 나지 않았는데. 숙이 뿌릴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향에 잠시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은 숙희였다. 뭐라 물어볼까 싶다가 고개를 저은 숙희는 제 상사의 이상한 변화를 머릿속으로 혼자 잘 조합해 보기로 했다.